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지독한 여백 - 치매행致梅行 · 98

洪 海 里 2014. 4. 21. 05:34

 

 

 

지독한 여백

 - 치매행致梅行 · 98

 

洪 海 里

 

 

 

달력을 떼어낸 자리 환하다

벽이 하루하루 바래는 동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늘을 껴안은 채

아내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홀로 껴안고 있던 그늘의 여백이

평생의 삶을 하얗게 그려 놓았다

때가 잔뜩 묻은 날 씻고 닦을 때가

되었다. 때가 때를 만난 것

언젠가는 끝날 날이 있다고

언젠가는 열릴 날이 있다고

세월은 하루하루 떠나가면서

아쉬움에 주변을 쓰다듬었던 것이다

진창의 일상이 그려 놓은 세월의 경계

독방에 든 수인의 달력은 불안하다

한 해가 가도 넘어가지 않는다

울고 싶을 때도 울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 닦지도 않는다

대나무 푸른 그림자 보지 못하고

풍경 우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일탈하지 못하는 구극駒隙의 일상이 아프다

그늘에 들면 누구나 혼자가 된다

이제는 바닥을 치올라야 하는 시간

나는 달력 주변 때 탄 자리에 있었다

아내는 참혹한 그늘이 되어 

아픔으로 지독한 여백을 메워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