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101
洪 海 里
춘삼월 봄이왔다고
바람이 양지쪽에 수줍게 핀 양지꽃을 안고
하늘이 노랗게 물이 들도록 비벼대고 있다
뭘 보겠다고 저 난리들인지
모두 눈을 있는 대로 또랑또랑 뜨고
지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밑이다
밑구멍에는 뭔가 은밀히 숨겨진 게 있다
눈석임물에 발을 씻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분홍여우 노랑여우
깔딱고개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소나무가 푸른 눈썹 씀벅이며 내려다보고 있다
봄은 눈뜬 장님들이 헤매는 미궁의 계절
몸과 마음 사이로 난 끝없는 미로에서
볼을 꼬집어대고 몸뚱어리를 그냥 던진다
아지랑이도 몸부림치느라 정신이 없다
아스라해지다 어스레해지다 해가 진다
모두들 마디마디 아파서 악을 쓰고 있다
말없이 말하는 게 꽃이고 나무라는 자연이다
양수가 터지고 밀려오는 풀소리 쓰나미
지상을 푸르게푸르게 덮치고 있다
봄이 왔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잔인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는
춘삼월 봄이 왔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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