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시> 찔레꽃 시편

洪 海 里 2013. 6. 25. 04:49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찔레꽃


洪 海 里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

흰 면사포 쓰고
고백성사하고 있는
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

윤이월 지나
춘삼월 보름이라고
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찔레꽃


洪 海 里


장미꽃 어질머리 사이
찔레꽃 한 그루
옥양목 속적삼으로 피어 있다.

돈도 칼도 다 소용없다고
사랑도 복수도 부질없다고
지나고 나서야 하릴없이 고개 끄덕이는
천릿길 유배와 하늘 보고 서 있는 선비.

왜 슬픔은 가시처럼 자꾸 배어나오는지
무장무장 물결표로 이어지고 끊어지는 그리움으로
세상 가득 흰 물이 드는구나.

밤이면 사기등잔 심지 돋워 밝혀 놓고
치마폭 다소곳이 여미지도 못하고 가는
달빛 잣아 젖은 사연 올올 엮는데,

바람도 눈 감고 서서 잠시 쉴 때면
생기짚어 피지 않았어도
찔레꽃 마악 몸 씻은 듯 풋풋하여
선비는 귀가 푸르게 시리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푸서리의 찔레꽃

洪 海 里


도시락
둘러멘
무명 보자기
계집애
하얀 얼굴
잘 익은 농주든가
아질한 향내

먼지 풀풀
황톳길
허기진 바람
가뿐 숨
단내 나는데
딸각딸각 빈 소리
타는 고갯길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찔레꽃 필 때

洪 海 里



제 가슴속

하얀 그리움의 감옥 한 채 짓고

기인긴 봄날

홀로

시퍼렇게 앓고 있는 까치독사

내가 줄 게 뭐냐고

먼 산에서

우는 뻐꾸기

해배될 날만 기다리는

오동나무 속

새끼 딱따구리

까맣게 저무는 봄날---.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찔레꽃에게

 

洪 海 里

 

찔레꽃 피었다고 저만 아플까

등으로 원망하고

어깨로 울며 가더니

가슴에 눈물로 물거품 지어

물너울 치며 오는구나

슬픈 향기 자옥자옥 섭섭하다고

그리움은 그렁그렁 매달리는데

꽃숭어리 흔들린들 지기야 하겠느냐

푸른 잎 사이사이 날카로운 가시여

그게 어찌 네 속마음이겠느냐

그렇다고 꽃 이파리 다 드러낼 리야

꽃잎마다 네 이름을 적어 놓느니

저 꽃이 지고 나면

빨간 사리가 반짝이며 익으리라

낙엽 지고 갈바람 불어온다 한들

찬 서리하늘 어이 석이지 않으랴

저렇듯 네 가슴도 환하게 밝혀지리니

찔레꽃 진다고 저만 아프겠느냐.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독사

 

洪 海 里

 

가난해도 찔레꽃 필 때 좋았다

실하게 쑥쑥 솟아오르는 새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하얀 꽃 피어 코가 알싸할 때면

배고픈 눈에 세상이 어지럽기도 했지만

슬픔 같은 건 물가 모래처럼 쓸려나가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아무 말도 없이 네가 떠나고 나서

빈 자리만 잔향으로 가득하니

취한 벌 잉잉거리는 소리

가슴속 호수에 잔 파문을 짓는다

네가 꽃피던 때가 그리워

가시덤불 아래 똬릴 틀고 기다리노니

찔레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며

날것으로 푸르른 봄날은 가지만

몸속에 일렁이는 광기와 일탈의 불꽃

제 등도 스스로 긁지 못하는 슬픔으로

찔레꽃은 한 잎씩 떨어져 내리는데

어찌하여 여치는 울기만 하는 것이냐

찌르르찌르르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냐.

           - 계간《시에》(2013. 여름호)

 

 

 

 

찔레꽃

 

洪 海 里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독사 대가릴 물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독사 한 마리 나타나 고양이를 물어 기절시키는 것이었다

 

꿈이었다

 

계사癸巳년 뱀띠 해

 

그 자리,

 

하얀 찔레꽃 시들시들 울고 있었다.

 

 

 

 

 

찔레꽃


洪 海 里



목이 타는
愛蓮里
遠西軒 지나
옥양목 펼쳐놓은
찔레꽃더미
홀로 헤매다
길 잃은
牽牛.

은하 물가
푸른 풀밭
소 떼를 찾아
피리소리 하나 잡고
강을 건너서
젖어오는 그리움에
길 잃은
織女.

* 원서헌 :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8. 오탁번 시인의 원서문학관 

 

 

 

찔레꽃은 왜 피는가
- 閑居日誌

 

 

洪 海 里


찔레꽃은 왜 피어서
슬프도록 하얀 향을 뿌리는가

수술실에서 나와 보니
입술이 속으로 하얗게 탔다

봄은 어쩌자고 또 다시 와
찔레꽃을 피우고

나는 왜 황토마루에 서서
찔레꽃 향기에 목을 놓는가. 

 

 

   * 찔레꽃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시화 및 영상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금난초와 은난초  (0) 2013.06.30
<시> 풍란風蘭  (0) 2013.06.28
<시> 하지夏至  (0) 2013.06.21
<詩> 망망茫茫 -나의 詩  (0) 2013.06.18
<시> 단오端午  (0) 201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