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거울」 시 3편

洪 海 里 2013. 9. 7. 16:54

거울 1

 

洪 海 里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똑똑히 보이는
내 영혼의 뼈와 살의 무늬들
전신이 맑아오는 칠흑의 세계
어디서 새벽녘 두레박 소리 들리고
어둠이 물러가는 그림자 보인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거울 2

 

 

가을은 그렇게 큰 거울을
하늘 높이 달아 놓고 나를 부른다.
언제 내 가슴에 그렇게 크고
맑은 거울이 비친 적이 있었던가
사랑도 시들해 새들은
머언 숲 속으로 날아가고
양지바른 무덤가에
풀잎도 금빛으로 타는 때면
그대 눈 속에선
물 흐르는 소리만 곱게 들리고
달빛에 취한 한 움큼의 꽃향기
나뭇이파리 하나 흔들쟎으며
나의 가슴만 허물고 있다.
문득 나를 압도하는 가을 하늘이
내가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나를 듣지 못할 때
나의 꿈 속까지 헤매면서
나의 잠을 쫓고 있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거울 3

 

들에 나서면 날이 저문다
빛나던 여름의 피를
저녁바람으로 닦으며
어딘가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푸른 하늘에 피던
저문 산의 새소리
하느님의 뜰에 나뭇잎은 지고
분주한 발자국 소리 들리면
낯선 여자들이
바위 속 깊이에서
속옷을 추스리고 있다.
그녀들의 눈물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 것일까
마른 풀잎의 이슬이 자라서
큰 바다가 일어서고
물결마다
은빛 바람으로 엮는 노래가 충만하다.

하늘엔
온갖 허물이 벗겨지고
차가운 이마
투명한 언어가
지층 깊이 내려
기다리는 죄를 다시 앓는다
건강한 사내들이
그 죄의 끈을 잡고 겨울을 맞고 있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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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9. 7.(토) 백로白露


한 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슬이 내리는 날
백로白鷺가 날아와
풀잎마다 물알을 낳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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