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어머니 / 아버지 詩篇

洪 海 里 2017. 5. 24. 08:25

어머니 / 아버지 시편

 

어머니는 바다입니다. 나를 열 달 동안 둥둥 띄워서 길러준 바다입니다.

어머니는 대지입니다. 논과 밭이 펼쳐진 들판입니다. 나의 피와 살과 뼈를 길러준 흙입니다.

어머니는 하늘입니다. 나를 바른 사람으로 살도록 보살펴 주는 하늘입니다.

어머니는 자연입니다. 한 포기 풀이요, 한 그루 나무요, 나의 정신인 산이요, 나의 사랑인 물입니다.

어머니는 내 영혼의 꽃이요, 내 육신의 밥이요, 나의 모든 것입니다. - 隱山.

 

 

시간을 찾아서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번지
신사년 오월 초엿새 2305
(2001626일 밤 115)
스물세 해 기다리던 아버지 곁으로
어머니가 가셨습니다
들숨 날숨 가르면서
저승이 바로 뒷산인데
떠날 시간을 찾아
네 아들 네 딸 앞에 모아놓고
며느리 사위 옆에 두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가는 시간을 맞추어
마지막 숨을 놓고
말없이,
한마디 말씀도 없이
묵언의 말씀으로
이승을 멀리 밀어놓고
어머니는 가셨습니다.
여든두 해의 세월이, 고요히
기우뚱했습니다.

* 20016262305분 어머님은 가셨습니다.
어머님은 고향집에서 100m쯤 되는 뒷산 양지바른 자리에 1978년에 먼저 가신 아버님과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는 20세기에, 어머니는 21세기에 떠나셨습니다.
자식들이 불효하는 녀석들이라 제삿날을 잊지 말라고
아버님은 정월 대보름에, 어머님은 단오에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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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몇 편의 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주제로 쓴 글입니다.

 

 

어머니

 

 

바람 부는데 무뜩 생각이 납니다

 

번개 치는데 번쩍 생각이 납니다

 

비가 오는데 언뜻 생각이 납니다

 

그냥 불쑥, 불쑥 생각이 납니다!

 

 

가을 들녘에 서면

 
다들 돌아간 자리
어머니 홀로 누워 계시네
줄줄이 여덟 자식 키워 보내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처럼
다 퍼내 먹은 쌀뒤주처럼
한 해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허허한 어머니의 이 누워 계시네
알곡 하나하나 다 거두어 간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겨울바람 매섭게 몰려오는
기러기 하늘
어둠만 어머니 가슴으로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길에는 막차도 끊겼는가
낮은 처마 밑 흐릿한 불빛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위하여
빈 몸 하나 허허로이 누워 계시네.
- 시집 , 벼락치다(2006)

 

 

 

어머니들

 

가네 울타리에는

목 잘린 해바라기 대궁 하나 서 있고,

 

가네 밭에는

옥수수 이파리 바람에 버석거리고,

 

가네 산에는

알밤 털린 밤송이만 굴러다니고,

가네 논두렁에는

빈 꼬투리만 콩대에 매달려 있고,

 

가네 담에는

호박넝쿨 가을볕에 바싹 말라 있고,

 

가네 논에는

텅 빈 한구석 허수어미 하나 서 있네.

 

 * 허수어미 : 허수아비의 상대어가 없기에 만든 조어임.


별곡別曲

 

 

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눈이 하얗게 깔렸다.

산새들은
마을로 내려오는데
아버지는 혼자서 산에 계셨다.

 세상이 은빛 일색
갈 길은
막막했다.

 

(시집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1978. 2. 22.)

 

 

 

 

미루나무

1
반짝이는 푸른 모자
팍팍한 둑길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아버지.

2
새로 난 신작로
차 지날 때마다
뽀얀 먼지 뒤집어쓴 채
멍하니 서 있던 아버지.



어버이날

 

 

줄줄이 늘어지게 매달린

아들 넷

딸 넷

여덟 자식들.

 

생전에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등나무 꽃을 달면 눈물이 난다.

 

- 시집독종(2012, 북인)

 

 

정월 대보름

- 치매행致梅行 · 216

 

 

이승에서 마지막 산책을 하신 날

정월 열엿새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대보름이면

우주 산책 중

아버지는 등불을 휘영청 밝혀

지상을 잔잔한 꽃밭으로 만들어 놓고

달빛 날개를 타고 지구로 오십니다

어쩌다 달이 뜨지 않을 때면

백매白梅 암향暗香처럼 세상이 더 은은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환하고

들리지 않아도 아버지는 그곳에 계십니다

평생 잰걸음을 하지 않던 걸음걸이

그대로 지상에 내려오셔서

나이  자식을 위해 등불을 켜십니다

한 등 한 등 밝힐 때마다

매화꽃 한 송이씩 피어나는데

오곡밥 나물 반찬 귀밝이술 부럼깨기

더위팔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어느 한 가지도 준비 못하고

상원上元을 맞이합니다

아버지,

못난 자식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한가위 보름달

- 치매행致梅行 · 173

 

 

아버지 어머니,

평안히 계시는지요?

 

아버지는 1978년에 가시고

어머니는 스물세 해 뒤에 가셨습니다.

 

그러니 두 분이 가신 지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올해도 지상엔 오곡백과가 둥글둥글합니다.

그러나 제 가슴은 흉년이 들어

추석 차례상도 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여, 하늘 높이

달 하나 덩그마니 띄워 놓았습니다.

올해는 달떡 드시며 한가위를 지내십시오.

 

휘영청 밝은 달빛에

무릎 꿇어 큰절을 올립니다.

 

부디 불초자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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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네 편 시는 이대의 시인과 김한순 시인이 어머님 장례식에 와 선산의 패랭이꽃을 보고 쓴 작품에 내 화답시를 붙여본 작품들입니다.

 

 

패랭이꽃 한 송이

李 大 儀



상갓집 뒤뜰
눈물로 진하게 핀
패랭이꽃
착한 사람들
문상 왔다 보고 가라는
가신 님 고운 마음 같아서
한 점 그리움 찍어두고 돌아섰네
마음속에 담아두고 왔네.



패랭이꽃
- 이대의 시인에게

洪 海 里

대의 시인이 두고 간
패랭이꽃 한 송이
장마철 반짝 드는 햇살처럼
가슴에 피다

먼 길 돌아 돌아
여든두 굽이 지나
영원을 찾아서
시간을 세우고

길 없는 길을 따라
지평선을 넘어
무지개를 지나

허공 어디쯤 가고 계신
어머니
극성 더위 식혀 드리고자

패랭이 하나
씌워 드리오니

쓸쓸한 길
홀로 가시는 길
옷깃에 스며오는 서늘한

패랭이꽃 한 송이!
(2001.07.)

============


 어머니의 인사

김 한 순


상가 뒷산에 핀
패랭이꽃 한 송이
문상 간 나에게
미소 짓고 있었네


어서 와요
잘 왔어요
이곳은 참으로 따뜻한 곳이에요
난 잘 있다 가요

저녁 햇살에 미소 띠우는
패랭이꽃 한 송이
상가 뒷산에서
반겨주고 있었네.

 

 


패랭이꽃 한 송이
- 김한순 시인에게

洪 海 里

어머니 가셔서
온통 세상이 적막한데,

아버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계신
잔디마당
패랭이꽃 말없이 피어 있었다.

스물세 해 기다리며
쓸쓸한 세월의 사랑으로
아버지가 피워 올린
패랭이꽃이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숱한 자식들 다 어디 있는지
패랭이꽃만 피어서
한적한 산자락을 지키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명암도
꽃 앞에선
안팎이 없는 빛이고 어둠일 뿐,

패랭이꽃만 말없이 피어 있었다.
(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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