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백일홍
어디선가
배롱배롱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해질녘 저 여자
홀딱 벗은 아랫도리 거기를
바람이 간지럼 태우고 있었다
깔깔깔
서편 하늘로
빨갛게 오르는 불을 끄려
제 발 저린 바람은 손가락 볼우물을 파고
제 마음 뜸 들일 새도 없이
추파를 흘리는 여자
자리자리 꺄륵꺄륵 거리며
포롱포롱 날아오르는
저 여자 엉덩이 아래에 깔리는 그늘도 빨개
몸이 뜨거워져 설레는 것은
내가 아닌가 몰라.
* 섬초롱꽃
♧ 꽃이 피면 바람 분다
꽃이 필 때 날씨가 따뜻한 것은
널 빨리 보고 싶은 내 마음 탓이고
꽃 피면 어김없이 바람 부는 까닭은
산통으로 흘린 땀 식혀주려는 뜻이다.
꽃이 피고 나서 추워지는 것은
오래 곁에 있고 싶은 네 생각 때문이려니,
춥다고 탓하겠느냐,
바람 분다 욕하겠느냐.
♧ 할미꽃
생전에 고개 한 번 들지 못한
삶이었으니
죽어서도 여전하구나
있을 때 잘해! 라고 말들 하지
지금 여기가 극락인 줄 모르고
떨며 사는 삶이 얼마나 추우랴
천둥으로 울던 아픈 삶이었기
시린 넋으로 서서
절망을 피워 올려 보지만
자줏빛 한숨소리 우뢰처럼 우는
산자락 무덤 위
할미꽃은 고갤 들지 못한다
이 에미도 이제
산발한 머리 하늘에 풀고 서서
훨훨 날아가리라, 할미꽃.
♧ 천남성天南星
남쪽 하늘에 뜬 별을 보고
첫 남자를 그리워하다
죽어서 천남성이 된 코브라 같은 여자
천의 사내들[千男性]이 저를 거쳐갔다고
그래도 첫 남자가 그립다고
젓대 소리 들리지 않아도
상반신을 곧추세워
춤을 추었던 것인가
독을 뿜으려 고개를 흔들었던 것인가
온몸이 바소[披鍼]가 되어 사내들을 째려는 듯
째려보는 저 눈
슬픔으로 가득한 저 눈
이제는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는
천남성天南星으로 피어 있는 저 여자.
♧ 맥문동麥門冬
연보랏빛 꽃방망이 하나씩 들고
아니, 온몸이 꽃몽둥이가 되어
벌 떼처럼 일어서고 있는
한여름날 늦은 오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내
그립다는 말조차 모르는 사내
흠씬 두들겨 주기라도 할 듯이.
♧ 쑥부쟁이
산등성이 돌아서 바람 가는데
해 종일 기다리는 여린 누이야
기나긴 근심 걱정 눈이 짓물러
가지 끝에 매다는 연자주 꽃잎
널 보는 이들마다 마음이 휘어
눈물 찍어 꺽꺽꺽 울음 토해도
오늘은 돌아서서 울지 말거라
쑥 내음 안섶 여민 어린 누이야.
* 흰명자꽃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시화 및 영상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담쟁이의 길 / 홍해리 (0) | 2013.12.10 |
---|---|
<시> 명자꽃 (0) | 2013.12.07 |
洪海里 꽃시집『금강초롱』시편 · 1 (0) | 2013.12.03 |
[스크랩] 가을 들녘에 서서 / 홍해리 (0) | 2013.11.25 |
<시> 가을 끝에 서서 (0) | 2013.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