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꽃시집『금강초롱』시편 · 1

洪 海 里 2013. 12. 3. 04:54

 

 

 

12월을 앞둔 시점에서,

홍해리 시인의 꽃시집『금강초롱』이 발간되었다.

'우리詩 시인선'으로 ‘도서출판 움’에서 나온 이 시집에서

작가는 ‘시인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꽃이 쓴 詩, 詩가 피운 꽃.

꽃 속의 詩, 詩 속의 꽃.

 

갈 데까지,

갈 때까지,

 

꽃 속에 살아 있자.

詩 속에 깨어 있자.

 

꽃詩

또는 詩꽃을 위하여!

 

2013 계사년 시월 상달

북한산 골짜기 우이동 세란헌洗蘭軒에서,

洪海里.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 나는 사람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 나는 사랑아.

 

 

 

 

유채꽃

 

내가 쓰는 글마다

하나같이 노란 연서 같다

성산일출 바다가 풀어놓는 물감보다

시적인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온통 노랗다

어쩌자고

제주 현무암처럼

내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뚤리는가

봄이 오면.

 

 

 

 

 

수련睡蓮이 필 때

 

수련의 푸른 발자국

물위에 뜨고

살며시 꽃을 피워 올리거든

천마天馬 한 마리 잡아타고

꽃 속 천리를 달려가 보라

하늘 끝까지 올라가 보라

시인이여

그대 갈 곳 어디련가

꿈속 천년 세상 끝까지

떠나라 떠나라

슬픔의 나라 눈물 속으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찾아서.

 

 

 

 

찔레에게

 

 

사랑한다 한마디 해본 적 없다.

 

 

바라는 것 없으니,

 

 

널 그냥 바라다볼 밖에야, 난!

 

 

 

 

각시붓꽃*

무지개 피듯

양지바른 산자락

잠시 다소곳 앉아 있던 처자

일필휘지로 꽃 한 송이 그려 놓고

날이 더워지자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도 소식이 없고

자줏빛 형상기억으로 남아

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네

기쁜 기별 기다리고 있네.

 

* 각시붓꽃은 여름이 되면 꽃과 잎이 없어지는 ‘하고현상夏枯現象’을 일으킴.

  

 

 

개망초꽃 추억

 

막걸리 한잔에 가슴 따숩던

어둡고 춥던 육십년대

술 마셔 주고 안주 비우는 일로

밥벌이하던 적이 있었지

서문동 골목길의 막걸리집

인심 좋고 몸피 푸짐한 뚱띵이 주모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고

자그맣고 음전하던 심한 사투리

경상도 계집애

좋아한다 말은 못하고

좋아하는 꽃이 뭐냐고 묻던

그냥 그냥 말만 해 달라더니

금빛 목걸이를 달아주고 달아난

얼굴이 하얗던 계집애

가버린 반생이 뜬세상 뜬정이라고

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

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집 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들 달걀 프라이나 부치고 있는가

지상에 뿌려진 개망초 꽃구름

시월 들판에도 푸르게 피어나네.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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