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잔인한 봄날 -致梅行 · 73

洪 海 里 2014. 3. 12. 05:09

잔인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73

 

洪 海 里

 

 

 

귀가 맑은 사람에게 봄은

거리의 열여섯 눈썹치마 팔랑이는 소리로 옵니다

산과 들 화사한 포연 속에서

새들은 집짓기에 분주하고

아지랑이가 떠메고 오는 저 가벼운 웃음소리들

펑펑 터지는 열락의 문들

이제는 눈이 밝은 사람들이 화궁花宮 속으로 들어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암호를 풀고 있습니다

바닷속이나 하늘에서도

목숨 있는 것들은 똑같습니다

봄은 어차피 잔인하기 그지없습니다

저 화려한 행렬 뒤에 늘어서 있는

노숙자들의 봄은 더욱 어둡고 춥습니다

외진 곳에서 숨 막히는 나날

잔인하다는 말은 차라리 사치이지 싶습니다

어쩌자고 봄은 또 와서

울렁거리는 가슴마다

나팔을 울리며 휘발유를 뿌려대는가

하느님은 그냥 성냥을 그어 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아내는,

오늘 처음으로 유치원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