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73
洪 海 里
귀가 맑은 사람에게 봄은
거리의 열여섯 눈썹치마 팔랑이는 소리로 옵니다
산과 들 화사한 포연 속에서
새들은 집짓기에 분주하고
아지랑이가 떠메고 오는 저 가벼운 웃음소리들
펑펑 터지는 열락의 문들
이제는 눈이 밝은 사람들이 화궁花宮 속으로 들어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암호를 풀고 있습니다
바닷속이나 하늘에서도
목숨 있는 것들은 똑같습니다
봄은 어차피 잔인하기 그지없습니다
저 화려한 행렬 뒤에 늘어서 있는
노숙자들의 봄은 더욱 어둡고 춥습니다
외진 곳에서 숨 막히는 나날
잔인하다는 말은 차라리 사치이지 싶습니다
어쩌자고 봄은 또 와서
울렁거리는 가슴마다
나팔을 울리며 휘발유를 뿌려대는가
하느님은 그냥 성냥을 그어 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아내는,
오늘 처음으로 유치원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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