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양파를 까며 - 치매행致梅行 · 130

洪 海 里 2014. 7. 24. 05:09

양파를 까며

- 치매행致梅行 · 130

 

洪 海 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전혀 속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내

양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듯

양파의 속을 일절 알 수 없습니다

아내는 양파의 여린 속살만 같아

뽀얀 진줏빛에 옅은 금빛도 띄었습니다

가멸차고 동그란 몸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껍질이 매끄러워 잡기 어렵고

어디로 구를지 몰라 예제를 헤맸습니다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는 동안

빛나는 양파는 금시에 한물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가벼운 껍질만 누렇게 남았습니다

젊었을 적엔 속살이 눈물 나게 하더니

이제는 내가 벗긴 껍질이 눈물짓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