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자작나무 숲에 가고 싶다 - 치매행致梅行 · 217

洪 海 里 2017. 3. 3. 05:24

자작나무 숲에 가고 싶다

치매행致梅行 · 217

 

洪 海 里

 

 

 

겨울이 오면 자작나무 숲에 가고 싶다

병사들처럼 기립하고 있는

수천수만 그루의 자작나무

눈이 내려앉은 우듬지에

마음 한 자락 얹어 놓고

나도 자작나무 껍질 같은 백지가 되고 싶다

스스로 떨어져 내린 가지 주워다

옆에 있는 시린 네게 군불을 지펴 주고

가슴속 달의 집에 불을 지르면

자작자작 타오르는 불길에 마음이 녹아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너를 보고 싶다

추울수록 따뜻한 네 손을 잡고

자작나무 숲길의 나그네가 되어

봄이 오면 둘이서 손잡고 서서

차라리 바위가 되고 싶다, 아내여!

 

 

 

[포토 에세이]

  雪國

이은택 기자 입력 2019-01-24    
 

 

 
 

 

국경의 긴 터널 끝에 있다는 순백의 설국을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가 보았을까. 
2017년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지. 
긴 눈길을 아이젠에 의지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때 숲이 있었어.
하늘, 땅, 나무 모두 눈부시도록 하얗게 뒤집어쓴 채

찬란한 빛인지 아니면 아득한 기억인지 모를 

그 숲이 거기에 있었어.
― 강원 인제 자작나무 숲에서
- 사진=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경북 영양의 검마산 깊은 산자락에 있는 죽파리 자작나무숲에는 축구장 40개 면적에 자작나무 12만 그루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 동아일보 2020. 12. 26. 김동욱 기자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