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홍주와 꽃게 - 치매행致梅行 · 219

洪 海 里 2017. 3. 3. 05:39

홍주와 꽃게 - 치매행致梅行 · 219
- 관매도에서

   洪 海 里
    



지초 뿌리 넣어 달이고 달인
마지막 남은 순수의
진홍빛 눈물
한 잔.

바다를 깨물던 집게발
이제 빨갛게 익어
사기 쟁반 위에 누워
하늘을 문다.
   - 시집『은자의 북 』(1992, 작가정신)


홍 선생님

이렇게 늙어서도, 누가
지초와 홍주의 붉은 색을 씹으며 시를 쓰라 했나
더욱이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것을 시로 바꾸는 오기
그래도 좋습니다
누가 뭐래도 좋습니다
슬픈 추억과 뜨거운 오기가 남아 있어 좋습니다
그는 갔지만 몇 뿌리의 시를 남기고 가서
산삼뿌리를 씹듯 씹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 관매도로 가서 홍주 마시는 코스를 다시 밟아야 하겠습니다
태풍을 만나더라도 시인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으니까
고맙습니다

2016. 10. 17.
이생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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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생진 시인과 둘이 1990년대 초 관매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마을 이장 댁에 여장을 풀고 가게에 나와 됫병 홍주를 사서 꽃게 안주로 하늘이 붉어지도록 마신 추억이 있다.

말로만 듣던 홍주를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것이다.
「홍주와 꽃게」는 그렇게 탄생한 글이다.
추석 전날 부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드린 이생진 시인께서 그때 생각이 나셨던가 보다.

태풍으로 배가 뜨지 못하는데 마침 마을에 혼사가 있어 신랑을 태운 5톤짜리 배를 얻어 타고 팽목까지 나왔던 아찔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隱山蘭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