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blog.daum.net/ch66da에서 옮김.
정월 대보름
- 치매행致梅行 · 216
洪 海 里
이승에서 마지막 산책을 하신 날
정월 열엿새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대보름이면
우주 산책 중
아버지는 등불을 휘영청 밝혀
지상을 잔잔한 꽃밭으로 만들어 놓고
달빛 날개를 타고 지구로 오십니다
어쩌다 달이 뜨지 않을 때면
백매白梅 암향暗香처럼 세상이 더 은은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환하고
들리지 않아도 아버지는 그곳에 계십니다
평생 잰걸음을 하지 않던 걸음걸이
그대로 지상에 내려오셔서
나이 든 자식을 위해 등불을 켜십니다
한 등 한 등 밝힐 때마다
매화꽃 한 송이씩 피어나는데
오곡밥 나물 반찬 귀밝이술 부럼깨기
더위팔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어느 한 가지도 준비 못하고
상원上元을 맞이합니다
아버지,
못난 자식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도서출판 움)
* 2018. 3. 2. 동아일보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나는 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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