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귀를 비우다 - 치매행致梅行 · 298

洪 海 里 2017. 10. 31. 05:55

귀를 비우다

 - 치매행致梅行 · 298


洪 海 里

 

 

아침부터 저녁이 낮이 아니고

저녁부터 아침이 밤도 아니다


아내는 귀를 비웠다

하얗게 시리도록 하염없이 피고 지는 

말의 홍수에 떠내려온 삶

겸손과 배려와 인내와 절제의

칼집 같은 침묵의 자궁을 위하여

아내는 말없는 세상에서

댓잎의 귀를 아득히 밝히고

나비처럼 다가온 서늘한 바람

눈빛 그늘에서 길을 묻고 있는

자신을 설핏 허공에 묻고 있다

 

절절 이글대는 천의 바다를 지나

마음 다 내려놓고

설이雪異 분분粉粉한 겨울날, 아내는

소소昭昭한 해인海印으로 귀를 씻었다.


 * 2010. 10. 23. (사) 우리詩진흥회의 괴산 '산막이옛길' 문학탐방 행사 중에 李大儀 시인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