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한심한 봄날 - 치매행 236 /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18. 3. 10. 09:02

                                                                 


 

한심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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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 海 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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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라, !

고여 있으면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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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구멍을 만나 피리를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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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도 취해서

해를 배는 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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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여!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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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해리 시인은 치매癡呆를 주제로 한 연작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 연작시만 모아서 치매 시집 두 권을 발행했고, 그리고도 계속 같은 주제로 치매행 236번 째 시를 쓴 것이 위의 시입니다. 독자들도 잘 아시겠지만 치매란 병은 육체적 병이 아닙니다. 병균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세포에 의한 병입니다. 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걸어 다니는데 이상이 없고 말하는데 이상이 없고 듣는데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을 구분할 수 없으며 남편을 남편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집을 나서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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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해리 시인의 아내는 나이 먹은 노년이 아닌데, 치매로 고생합니다. 교직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명예퇴직을 하고 자식들도 다 키워 짝을 이뤄 살도록 날려 보냈습니다. 이제 노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여유가 생길만하면 악재가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홍해리 시인은 월간 문예지《우리詩》의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낮 시간에는 아내를 요양원에 보냈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근간에 병세가 심해지자 집에서 보살피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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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봄날에 쓴 시. 물을 보고 말합니다. 머물지 말고 흘러가라고 합니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게 됩니다. 바람은 구멍을 통과할 때 피리를 불게 됩니다. 이런 이치를 왜 여기서 말하는지 우린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아내는 현재 고여 있는 물이고 소리를 내어 노래 부르지 못하는 바람으로 정지되어있는 상태로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진정 시인은 바랍니다. 아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갔다가 스스로 찾아왔으면 좋겠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갈망이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같은 바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처] 한심한 봄날|작성자 솔봉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