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헌화가獻花歌

洪 海 里 2019. 1. 6. 05:38
헌화가獻花歌 

洪 海 里

 
그대는 어디서
오셨나요
그윽히 바윗가에 피어 있는 꽃
봄 먹어 짙붉게 타오르는
춘삼월 두견새 뒷산에 울어
그대는 냇물에 발 담그고
먼 하늘만 바라다 보셨나요
바위병풍 둘러친
천 길 바닷가 철쭉꽃
바닷속에 흔들리는 걸
그대는 하늘만 바라다보고
볼 붉혀 그윽히 웃으셨나요
꽃 꺾어 받자온 하이얀 손
떨려옴은 당신의 한 말씀 탓
그대는 진분홍 가슴만 열고.


     - 시집『投網圖』(1969, 선명문화사)



   * 홍해리 시인의 시적 출발은 현실세계에 대한 탐구보다는 심미적

세계의 가치 추구가 우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의 미의식美意識

은 현실적 가치와 심미적審美的 가치가 충돌한 경우, 때로는 비장

悲壯美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는 세계와 있어야

하는 세계를 조화롭게 보려고 하는 우아미優雅美가 우세하다. 그런

면에서 홍해리는 형식적으로는 고전주의자이며, 기질적으로는 낭만

주의자이면서 전통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찾는 이 세대의 미학

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홍해리의 <헌화가>는 꽃을 꺾어 바친 노인

의 노래인 향가 <헌화가>의 시적 공간과 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하

고 있다. 거기에 시적심상을 한층 강화하여 연모戀募의 감정을 고

조하고 있다. '짙붉게 타오르는 진분홍 가슴'의 시각적 심상과 '두견

새 울음'의 청각적 심상을 결합하여 화자의 감정을 충실히 보여주면

서 인간의 애정에 대한 욕망을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청

자를 수로부인으로 설정하여 시적화자가 지닌 연모의 정을 한층

높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수로부인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수로부인의 내면세계를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시에서 '춘삼월

두견새'와 '천 길 바닷가 출쭉꽃'은 자연물일 뿐 아니라 수로부인의

처지를 드러내는 비유比喩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에서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작품들은 대부분 수로부인 설화를

충실하게 재현했다면, 홍해리의 <헌화가>에서는 수로부인의

설화를 확장하는 과감함을 보여 준다. 또한 그 관심의 초점을 수로부

인의 내면으로 전환하여 궁금증을 충폭시켜 풀어내고 있다. <헌화

가>가 변용된 기존의 현대시들이 대부분 원 텍스트에 집착하여 애정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면 홍해리의 시에서는 수로부인의 내면內面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여인이 낯선 사내에게 가지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인간이 지닌 본연의 모습에 충실히 접근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느끼게 하였다.

  - 하경숙, 『한국 고전시가의 후대 전승과 변용 연구』(2012, 보고사)

 

 

  *

다 아시다시피 이 시의 뿌리는‘삼국유사’에 소 몰고 가는 노인이라고만 밝힌 한 사내의 은근한 마음이 밴 노래‘헌화가'가 아닙니까. 석벽 위에 핀 아름다운 꽃을 갖고 싶어 하는 수로水路부인에게, ‘내가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벼랑 위의 꽃을 꺾어 주겠다'는 의뭉스런 말과 함께 꽃을 꺾어 바친 사내의 노래, 그런 사랑의 세계가 저 헌화가의 공간이 아닙니까. 의뭉스런 이 사랑의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홍해리 시인은 연모의 체온을 한층 더 높여 놓고 있습니다.‘짙붉게 타오르는 진분홍 가슴’의 시각 심상과 '두견새 울음’의 청각 심상을 결합하여 우리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 김삼주(시인)
*********************************<아시아경제 2016. 9. 23.>

 

              영화 '은교'와 헌화가

 

영화 '은교'중에서

영화 '은교'중에서

 
      

  박범신 소설을 영화화한 이 스토리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신라 향가 '헌화가'에서 우린 그 남자와 그 여자를 이미 만났었다. 여자는 8세기 무렵 신라의 최고 미인으로 꼽히던 수로부인이다. 성덕왕대의 순정공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동행하여 동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다 바위 벼랑에 있는 철쭉꽃을 보고 소리쳤다.

"아름다워라. 저 꽃.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줄 사람은 없는지요?"

영화 '은교'중에서

  벼랑 한 가운데 핀 꽃을 누가 꺾으러 내려가겠는가. 그 꽃 한 송이 따위에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 아름다운 여인의 간청이라 하더라도, 죽음과 바꿀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적어도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한 사내들도 슬그머니 그 말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때 짜~안 하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암소를 끌고 가마 앞을 지나가다가 멈춰섰다. 백발에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남자는 수로부인 앞에 나아가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吾兮不喩慙兮伊賜等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花兮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영화 '은교'중에서

영화 '은교'중에서

  돌덩이가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벼랑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가 꽃을 꺾어온 늙은 남자는, 여인에게 공손히 꽃을 바치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이란 말 속에 들어있는, 자의식이 묘하게 가슴을 흔든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저 스토리를 박범신은, 거울을 벼랑 중턱으로 떨어뜨린 17세 은교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는 70대의 이적요시인의 모티프로 부활시켰다. 어린 그녀에게 바치는 노시인의 헌화가이다. 늙어가는 존재의 성적 퇴화에 대한 비감이 섞여든 것은, 리얼리티를 위한 장치 정도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 삼국유사 스토리가 묻고 있듯이 '사랑이란 무엇이냐'이다.  


영화 '은교'중에서

영화 '은교'중에서

  강릉태수 순정공은 물론이고 그 주위에서 그녀를 호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꽃을 꺾으러 가려 하지 않았다. 자기 목숨보다 저 꽃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 노인이 목숨을 걸고 꽃을 바쳤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에게 꽃을 바친다는 건, 순정한 사랑의 표상이다. 이것을 뭐라 말할 것인가. 사랑은 젊음에게만 고유한 것인가. 순정은 나이들수록 사라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아닌가.


  영화 <은교>의 이야기 장치들은 헌화가 노인이 목숨을 걸고싶을 만큼 사랑을 느끼는 그 대상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다. 그 헌화가 노인은 다름 아닌, 늙어가는 모든 혹은 많은 남자들의 내면이기도 하다. 젊음이 상을 받은 게 아니듯 늙음 또한 벌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깐 갈아입는 무상한 육신의 옷. 그러나 사랑은 그것 저 아래에 숨어앉아 세월이 갈 수록 더욱 깊고 애절하고 뜻밖의 희열로 닥쳐드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말했듯이 적요한 인생에 더욱 피사체가 또렷하게 보인다. 젊을 때는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그 아름다운 빛과 냄새와 소리와 그림자와 뉘앙스들이, 그제서야 보인다는 주장을, 영화는 헌화가를 빌어 드러내고 있다. 

  숱한 감관의 기억들이 누적된 신체를 우린 '늙음'이라 부르지만, 우린 그걸 너무 조롱해온 건 아닐까. 사랑에서 '나이 차이'란, 태초의 순수영혼과 시간의 사이클을 통과해 거듭 순수해진 영혼이 서로를 응시할 때, 아침 이슬방울처럼 증발하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의 특별한 시작을 축하하며, 영화를 새롭게 곱씹는 날이다.
  
       
       
 
 

 

       


"아름다워라. 저 꽃.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줄 사람은 없는지요?"

영화 '은교'중에서

영화 '은교'중에서

-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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