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커니 잣거니』(미간)

남이 척산南二尺山

洪 海 里 2019. 3. 13. 14:35

남이 척산南二尺山

 

洪 海 里

 

 

고조부님 고조모님과 산이 되어 계시고

증조부님 증조모님과 뫼가 되어 계시고

할아버님 할머님과 언덕이 되어 계시고

아버님 어머님이랑 오름이 되어 계신 곳

 

척산촌수尺山寸水라도

나도 산이 되고 내가 되고 싶어

 

산으로 올라가 내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리

 

타향으로 떠돌다 돌아오면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이란 가슴속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 그 향기 같은 것

 

내 고향

남이 척산.

 

 

* 내가 태어난 곳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번지인데

지금은 청주시로 되어 있다.

 

- 월간 《우리詩》 2021. 4월호.(제394호).

 

* 네 권의 『치매행』 연작시집 이후 시인의 불안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랑하는 부인과의 사별 이후 또다시 혈육과의 영원한 이별도 있었기에 죽음과 대면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헤아려볼 수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곁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근본이 누워 있는 고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 시는 시인의 정신사적 흐름이 어디로 지향하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편이다.

시에서 정곡을 찌르듯 낯설면서, 마치 무언가 되돌릴 수 없고 지연시킬 수도 없다는 선언 같은 당혹감으로 와 닿는 것이 시의 대문 격인 ‘남이 척산南二尺山’이다. 남이 척산은 시 말미의 주를 보고서야 시인이 태어난 곳,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남이 척산은 고유명사이며 시인의 개인사적 공간이다.

이 시는 6연으로 남이 척산에 대한 내포적 의미는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1연부터 3연까지는 남이 척산은 조상님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자신도 산속에 들어가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싶다는,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4연부터 6연까지는 전반부 죽음의 의식을 말짱하게 거둬버리고 남이 척산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고향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시인에게 남이 척산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고향으로 남아 있다.

시인은 2연에서 “척산촌수尺山寸水라도/ 나도 산이 되고 내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고 있다. ‘척산촌수’는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볼 때에 산수가 작게 보임을 이르는 말’로써, ‘척산’은 그의 고향 척산리의 지명 유래와 무관하게 동음이의어적 함의를 품고 있다. 자신이 죽은 뒤 고향인 척산에 척산촌수의 존재로 조상님의 먼발치에 머물고 싶다는 소망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죽음은 조상님들의 계보 아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고유명사의 세계, 남이 척산)으로 돌아가 산, 고향(일반명사의 세계, 척산촌수)의 풍경으로 남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각별한 개인사적 의미가 일반화되는 것을 죽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임채우(시인 · 문학평론가) / 월간《우리詩》2021.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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