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홑말[單音節語]의 힘

洪 海 里 2019. 5. 16. 01:34

홑말[單音節語]의 힘


洪 海 里




내 몸은 뼈와 살과 피로 되어 있어 힘을 쓴다

몸에는 눈 코 입 귀 혀 손 발 배 볼 뺨 샅 이 좆

등 털 턱 씹 팔 젖이 있고

쌀과 밀과 콩과 팥을 섞어

불로 밥과 떡을 짓고 묵도 쑤어 먹고

김 굽고 국 끓이고 속을 푸나니

해 바뀔 적마다 달 따라 날 잡아

때를 맞춰 때를 씻고 사는 삶이 있다

벼 심고 나면 파 톳 무쳐 술도 마시고

너와 나 벗이 되어 담에 올라 굿도 하며

해 질 때 늪에 나가 딸과 놀을 바라보다

덫을 놓아 덤을 얻는 일도 즐겁지

붓 잡아 글도 쓰니 이만하면 살 만하지 않은가

안이나 밖이나 옷 입고 벗고 춤도 추나니

숨도 못 쉬고 침이나 흘리며 산다면 쓰겠는가

칼과 끌과 못으로 집도 짓고 뜰도 만들어

삽으로 땅의 흙을 파 꽃도 길러 꿀도 따

닭도 키우고 꿩도 길러 알도 먹고 사느니

낫으로 꼴 베는 꼴이 우습다고 놀리지 마라

봄과 갈에 뽕도 따고 임도 보는 날도 있고

뫼에 올라 풀 밟고 감 배 밤도 줍고

절에 가 절도 하고 중 만나 윷도 논다고

재 뿌리지 말거라 욕도 하지 마라

개 소 말을 기르며 가다가 샘에 낯도 비춰 보나니

논과 밭으로 된 들에 나가 낮엔 땀을 흘리고

밤이 오면 곤히 잠을 자니 꿈도 오지 않는가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지저귀는 새도

굴 속의 쥐도 저 좋아 찍찍대게 두고

맘 가는 대로 비 오면 쉬고 볕 좋으면 나니

곰과 범과 뱀과 벌을 피하고

길을 따라 뫼에 오르고 내에 나가니

해와 달과 별의 빛과 볕이 없으면 어찌 살 수 있으랴

나에겐 말이 있고 속에 얼을 지녔나니

첨부터 끝까지 곁에 옆에 누가 없다면

우리 밑엔들 뭐가 있기나 하랴

돈 벌고 똥이나 싸며 싸대며 싸우며 산다면

멋이 있겠는가 맛이 있겠는가

오늘은 배 타고 나가 돛을 올리고 닻을 내리면서

멍 들어 퍼런 맘도 풀어야지

뻘 속에 게나 돌 속의 내 넋이나 다른 게 뭔가

홀로 내리쏟는 물 그냥 바라다보고 서서

목을 뽑아 고래고래 악을 써 마침내 꾼이 되듯

갓 쓰고 신 신고 줄을 타듯 살 일이로다

얼씨구!




       다이아몬드 300개 박힌 6억짜리 시계

15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서 선보인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르트’의 6억 원대 시계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루트비옹’.
시계 테두리와 시계판 등이 300여 개 다이아몬드로 꾸며져 있다.
-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동아일보 2019.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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