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첩백매萬疊白梅
洪 海 里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그대가 날 맞이할 마중물을 마련케 함이려니
서두르지 마라
매화가 꽃봉오리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듯
느긋하게 기다리거라
우주가 열리는 찰나를 노량노량 기다리거라.
눈독 들이면 꽃은 피지 못하느니
지구가 도는 소리가 들리는가
우주가 움직이는 걸 느끼는가
나비가 날 듯 지구는 돌고
우주의 반딧불이 별들은 꽃이 필 때마다
반짝반짝 반짝이느니.
꽃 한 송이 속에는 사계가 들어 있어
꽃잎 한 장 피면 봄이요
두 개가 열리면 여름이 온 것이요
세 번째가 벌어지면 가을이요
또 한 장이 벌면 겨울이러니
한 해가 꽃 속에서 뜨고 꽃 속으로 저문다.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꽃 한 송이가 버는 시간을 견디는
아름다운 순간 순간이 아니랴
매화가 하얀 꽃잎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듯
그대가 날 기다린다면, 기다려만 준다면
만첩백매 만개하겠네, 나 오감하겠네.
만첩홍매萬疊紅梅
洪 海 里
겨울 한파 지나
꽃망울을 터뜨린
만첩백매가 만 겹의 홍매가 될 때까지
산 넘고 강 건너
바다 끝까지
흐르고 흐르다가
너 하나
내 마음에 새기고 새기면서
둥근 달 하나
만리장성 위에 걸어 놓으마
사랑아
이승의 무량한 사랑아
울다 울다 목이 쉬어서
붉고 붉은 꽃으로 피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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