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만첩백매萬疊白梅

洪 海 里 2019. 5. 28. 03:32

만첩백매萬疊白梅

 

洪 海 里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그대가 날 맞이할 마중물을 마련케 함이려니

서두르지 마라

매화가 꽃봉오리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듯

느긋하게 기다리거라

우주가 열리는 찰나를 노량노량 기다리거라.

 

눈독 들이면 꽃은 피지 못하느니

지구가 도는 소리가 들리는가

우주가 움직이는 걸 느끼는가

나비가 날 듯 지구는 돌고

우주의 반딧불이 별들은 꽃이 필 때마다

반짝반짝 반짝이느니.

 

꽃 한 송이 속에는 사계가 들어 있어

꽃잎 한 장 피면 봄이요

두 개가 열리면 여름이 온 것이요

세 번째가 벌어지면 가을이요

또 한 장이 벌면 겨울이러니

한 해가 꽃 속에서 뜨고 꽃 속으로 저문다.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꽃 한 송이가 버는 시간을 견디는

아름다운 순간 순간이 아니랴

매화가 하얀 꽃잎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듯

그대가 날 기다린다면, 기다려만 준다면

만첩백매 만개하겠네, 나 오감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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