홑말[單音節語]의 힘
洪 海 里
내 몸은 뼈와 살과 피로 되어 있어 힘을 쓴다
몸에는 눈 코 입 귀 혀 손 발 배 볼 뺨 샅 이 좆
등 털 턱 씹 팔 젖이 있고
쌀과 밀과 콩과 팥을 섞어
불로 밥과 떡을 짓고 묵도 쑤어 먹고
김 굽고 국 끓이고 속을 푸나니
해 바뀔 적마다 달 따라 날 잡아
때를 맞춰 때를 씻고 사는 삶이 있다
벼 심고 나면 파 톳 무쳐 술도 마시고
너와 나 벗이 되어 담에 올라 굿도 하며
해 질 때 늪에 나가 딸과 놀을 바라보다
덫을 놓아 덤을 얻는 일도 즐겁지
붓 잡아 글도 쓰니 이만하면 살 만하지 않은가
안이나 밖이나 옷 입고 벗고 춤도 추나니
숨도 못 쉬고 침이나 흘리며 산다면 쓰겠는가
칼과 끌과 못으로 집도 짓고 뜰도 만들어
삽으로 땅의 흙을 파 꽃도 길러 꿀도 따고
닭도 키우고 꿩도 길러 알도 먹고 사느니
낫으로 꼴 베는 꼴이 우습다고 놀리지 마라
봄과 갈에 뽕도 따고 임도 보는 날도 있고
뫼에 올라 풀 밟고 감 배 밤도 줍고
절에 가 절도 하고 중 만나 윷도 논다고
재 뿌리지 말거라 욕도 하지 마라
개 소 말을 기르며 가다가 샘에 낯도 비춰 보나니
논과 밭으로 된 들에 나가 낮엔 땀을 흘리고
밤이 오면 곤히 잠을 자니 꿈도 오지 않는가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지저귀는 새도
굴 속의 쥐도 저 좋아 찍찍대게 두고
맘 가는 대로 비 오면 쉬고 볕 좋으면 나니
곰과 범과 뱀과 벌을 피하고
길을 따라 뫼에 오르고 내에 나가니
해와 달과 별의 빛과 볕이 없으면 어찌 살 수 있으랴
나에겐 말이 있고 속에 얼을 지녔나니
첨부터 끝까지 곁에 옆에 누가 없다면
우리 밑엔들 뭐가 있기나 하랴
돈 벌고 똥이나 싸며 싸대며 싸우며 산다면
멋이 있겠는가 맛이 있겠는가
오늘은 배 타고 나가 돛을 올리고 닻을 내리면서
멍 들어 퍼런 맘도 풀어야지
뻘 속에 게나 돌 속의 내 넋이나 다른 게 뭔가
홀로 내리쏟는 물 그냥 바라다보고 서서
목을 뽑아 고래고래 악을 써 마침내 꾼이 되듯
갓 쓰고 신 신고 줄을 타듯 살 일이로다
얼씨구!
다이아몬드 300개 박힌 6억짜리 시계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첩백매萬疊白梅 (0) | 2019.05.28 |
---|---|
당신의 詩는 안녕하십니까? (0) | 2019.05.26 |
나는 간다 (0) | 2019.04.23 |
<시> 가만한 웃음 (0) | 2019.04.09 |
4·19혁명 기념 살풀이춤 (0) | 201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