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방가지똥

洪 海 里 2019. 7. 9. 06:44

 

 

 

* 방가지똥/시집 : 이동훈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hunii70)에서 옮김.

 

 

가지똥

 

洪 海 里

 

 

 

나는 똥이 아니올시다

나는 강아지똥이 아니올시다

애기똥애기똥 피어나는

노란 애기똥풀도 아니올시다

겅중겅중 방아 찧는

방아깨비똥도 아니올시다.

 

詩가 맛이 다 같다고

시가 맛이 다 갔다고

조·용·조·용 소리치는, 나는

향기로운 방가지똥

방가지방가지 피고 지는

방가지똥이올시다.

 

<감상 >

  홍해리 시인은고독한 하이에나에서 새벽잠을 잊고 백지 평원을 헤매 다니면서 시를 추수하는 이를 자처한다. 백지선 해리호를 타고 시의 바다로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가 빈 배로 귀항하기 일쑤인 것이 그의시작 연습이다. 잘 죽기 위해서라도 쓰고 또 써서 마침내 한 편 속의 한평생을 이루는 게 시인이 꿈꾸는명창정궤의 시론이다.

  방가지똥도 그렇게 해서 결실한 한 편일 것이다. 방가지똥의 방가지는 방아깨비의 사투리로 알려져 있으니 꽃 이름이 방아깨비의 똥이 된다. 방가지똥 줄기가 상처 입게 되면 흰 유액이 나오다가 좀 이따가 검게 변한다고 한다. 애기똥풀 줄기에서 나온 노란 액을 보게 되면 실제로 똥을 만난 느낌이 있어서 고개를 끄떡이게 되지만, 방가지똥의 경우엔 그렇게까지 봐야 하냐는 의아함이 생긴다. 방아깨비가 암만 흔해도 사람들이 방아깨비의 똥까지 인지하고 다녔을 거 같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줄기를 곧추세우기 전이나, 아예 줄기가 시든 후의 방가지똥의 자태를 보면, 맘 편히 푸지게 싼 똥의 모습이다. 약간 한갓진 곳에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있는, 한 바가지 똥이다.

  혹 이와 비슷한 다른 이의 주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바가지 똥이란 의미의 방가지똥을 생각해 내고 나는 사뭇 즐거운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대도 나 혼자 통했으니 서운할 것도 없다. 홍해리 시인의 말마따나 남 따라 가지 않은 게 스스로 기특했을지 모르겠다. 시인은 시가 맛이 다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야말로 시가 맛이 다 갔다는 명백한 증거로 본다. ‘맛이 같다맛이 갔다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해서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고유한 이름과 향을 가진 방가지똥을 거들어주면서 시 쓰는 자세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명쾌한 시가 아닐 수 없다.

  홍해리 시인은 매일의 새벽, 책상머리에 앉아 먼 바다로 배를 띄운다. 책상이 곧 목선이고, 목선의 이름은 해리호다. 해리호의 투망에 걸린 월척이 적잖은 걸 알고 있지만, 가슴 정곡에 명중하는 시를 낚기 전까지 시인이 배 띄우는 수고를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이동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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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 20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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