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주유천하酒遊天下

洪 海 里 2020. 9. 6. 10:26

주유천하酒遊天下

 

洪 海 里

 

 

다 내려놓고 길 떠나

저물녘 주막집에 닿으면

목로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잔에 시름 거둘 때,

 

'몰래 잠깐'이란 말 잔에 띄우고

가만히 바라보니

무언가 간지러운 것이 분명 있을 듯,

 

사랑 이전의 어떤 여린 것만은 아니라서

비린 것의 풋풋함을 지나

막 익어가는 맛도 날 법하건만,

 

붙박이가 아닌

흐름흐름 흐를 듯도 한

'몰래'라는 말에는 은밀하고 짜릿한 맛이

'잠깐' 속에는 자위와 위안이 들어 있어,

 

웃어도 혼자 웃고

울어도 홀로 우는 세상도

좋아라, 좋아라.

 

- 월간 《우리詩》 2021. 12월호.

 

 

* 김관호, ‘해질녘’(1916년). 1916년 도쿄미술학교 졸업미전 출품작으로 일본 최고 공모전에서 특선을 받았다. 도쿄예술대 소장. 동아일보 2021. 7. 20.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걸리밥  (0) 2020.09.09
막걸리젖  (0) 2020.09.06
네가 날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0) 2020.09.05
우이동 우거  (0) 2020.09.05
물은 흘러간다[法]  (0) 20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