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커니 잣거니』(미간)

한범 홍형택洪熒澤

洪 海 里 2021. 6. 24. 15:45

 한범 홍형택洪熒澤

 

洪 海 里

 

 

 

한범이는 내 맏손자

2004년 한글날

꿈속에서 호랑이를 품고 나서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가던 날

차 안에서 연락을 받고

꽃 한 송이 들고 병원에 들러

첫 상면을 했지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을 모아

이름을 뭐라 지어 줄까 하다

한글날 태어났으니 '한글'이라 할까

아니, 기왕이면 사내다운 이름을 주자는 생각으로

'한범', 즉 큰 범이란 뜻을 새겨봤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봉우리 '봉峯'자를 주시고

내가 아들에게 옥돌 '민珉'자를 주었듯이

아들은 손자에게 반짝일 '형熒'자를 붙여 주어

남양 홍씨 익산군파 38세손의 이름은

洪熒澤이 되었으니

洪자도 물이요,  澤자도 물이니

앞뒤의 물을 막을 字는 불밖에 없지 않은가

괜찮은 선물이구나 했지

어릴 적부터 손자의 꿈이 경찰이라 하니

그것 또한 좋은 일이로다

아버지는 내가 돈을 모른다고 걱정이셨다

그래서 당신의 손자는 '사'자 직업을 원하셨지만

아들은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일은 싫다 했지

방송국 피디를 원하더니 결국 언론에 종사하게 되었다

손자는 불로 타오르기만 하는 세상에서

물의 역할을 하겠다니 쌍수로 환영!

할아버지 살아 계실 때

아버지와 내가 술상을 차리고

아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게 술을 따르곤 했지

아들은 내게 증손자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으라는데

사람이 하는 일인지

하늘이 하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살아지는 게 인생이니 사라질 때까지

4대가 함께하는 술상을 받아볼 수 있을까

그냥 한번 살아 볼 일이다.

 

- 월간 《우리詩》 2021. 10월호.

 

 

* 한범 洪熒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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