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어린아이 - 치매행 · 4

洪 海 里 2021. 10. 3. 09:21

어린아이
-치매행·4 
 
洪 海 里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 홍해리 시집, 『치매행致梅行』(황금마루,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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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우리詩』를 발행하고 있는 (사)우리詩진흥회는 1986년 ‘우이동시인들’이라는 시동인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매월 시낭송회와 해마다 여름시인학교를 개최하여 독자 대중들에게 시를 소개하고 시적인 삶을 실천하는 참으로 격이 높고 아름다운 단체입니다. (사)우리詩진흥회 이사장 홍해리 시인이 근년에 『치매행致梅行』이라는 좀 특별한 시집을 상재했습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이라는 수사가 붙은 이 시집은 인용한 시에서도 볼 수 있듯 치매(癡呆)라는 안타까운 병에 든 아내를 향한 눈물겨운, 연작시 150편의 사랑노래입니다.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시인의 말>)라고 언급하고는 있지만 “아늘아늘하던 아내는 어디 가고// 낯선 사람 하나 내 앞에 서 있습니다.”(「어느 날 문뜩-치매행致梅行·7」)는 통절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 맞고 있는/ 한여름날// 대낮의/염전입니다”(「무제-치매행致梅行·19」)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매에 든 아내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 자신을 ‘아낙군수’라고 명명(命名)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쌀 씻어 안치고/ 청소하고/빨래하고/ 밥 먹고/ 씻부시고,// 문 닫고 들어앉아 아내랑 놉니다/ 할 말도 없어 그냥 바라보다 마는 것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긴 하지만, - (중략)-밥 먹고 물 마시고/ 아내랑 노는 일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서/ 요즘은 그것도 내겐 축복입니다.”(「아낙군수-치매행致梅行·16」)라는 시구에 이르니 저는 어떤 말씀을 펼쳐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시「마취-치매행致梅行·53」는 치매(致梅)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아내를 그려놓은 가을꽃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종암(시인) 
 
<대경일보> 2016년 11월 16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