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매일 2021.04.01.
[문학칼럼-시인의눈]
낮과 밤, 나의 이중생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현실과 구분이 안 되는 또 하나의 현실, 잠에 취해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늘 나는 거기서 또 다른 생을 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성격이나 인성이 밤에도 만들어지는 것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면서 신기해했던 무의식의 비밀이 치매약 한 알로 알 수 있게 된 신기함이 나이 들어감의 허망함을 압도하지는 않았지만, 운명이니 담담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늘도 벌레가 온몸을 뚫고 나오는 생생한 꿈에 놀라 아예 잠을 못 이루기도 했고, 잊고 살았던 사람을 꿈의 면전에서 만나는 놀라운 상봉에 가슴 뛰기도 했다. 사실 과학적으로 치매약이 꿈을 선명하게 해준다고 규명되었는지는 들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매화에 이르는 길」이라는 홍해리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보면 치매 환자인 아내의 약을 실수로 먹은 고백이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기도 치매 환자가 되었다고 좋아한다. “내가 약을 먹었어도 아내가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리지가 떠오르는 감동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건 그다음의 내용이다. 왜냐하면 “그날 밤 꿈속에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맸다”고 했다, “미아가 되었던 아내의 긴 세월을 하룻밤 꿈으로 대신했나 보다”라고 했다. 치매 예방약을 일부러 복용해보라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때로 병이 몰랐던 다른 세상을 보게 하듯이, 나쁜 일이 우리의 생각과 철학과 삶의 폭을 키워주기도 한다. 마냥 슬퍼할 이유가 없다. - 김영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집으로 가는 길 - 치매행致梅行 · 187 洪 海 里 어쩌다 실수로 아내의 치매약을 먹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염없이 거리를 헤맸습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일도 차를 타는 것도 다 잊은 상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우적허우적거리다 때로는 허공을 날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길을 잃고 헤맨 아내 그 뒤를 쫓아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여덟 시간 미아가 되었던 아내의 긴 세월을 하룻밤 꿈으로 대신했나 봅니다 아내의 치매약으로 다른 한세상을 구경한 내가 약도 없는 치매환자가 되어 환한 대낮에 길을 잃고 허청댑니다 한세월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 한술 더 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집은 어디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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