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지하철 시편

洪 海 里 2024. 12. 18. 10:56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월간 《牛耳詩》 2002. 11월호(제173호) 게재.

    -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시집『독종』(2012, 북인) 

산책 

洪 海 里

 

한발 한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

 

 



시인이여 詩人이여

- 시환詩丸

洪 海 里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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