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2025. 1. 15. 17:20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에서

* https://jeomgui.tistory.com <푸른 하늘 은하수>에서 옮김.

 

[시를 읽는 아침]

 

• 홍해리 <가을 들녘에 서서>

- 중도일보 2007.09.18.

버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요?
말이야 쉽게쉽게 건네지만 정작 버려야 할 때는 이것저것 걸리지 않는 게 없고,
모두 알토란같은 소중한 것이 되는 것이지요.
남들에게 비웠다고 존경 받고 싶은 것은 눈먼 내 생각일 뿐이지요.
아무리 정장을 해도 풍찬노숙의 방랑자만도 못한 것은
모두 버리지 못하고 몇 가닥이라도 붙잡고 있는 욕심 때문이지요.
그게 인생이라고만 푸념으로 넘기지 않을 수 없지만,
버리고 가득한 가슴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쁜 일상에서 잠간만이라도 해지는 들녘에서 뽐내는 가을을 만져보면서
그렇고 그런 삶을 다리미질 해 보면 어떨런지요.
- 김영수 | 한남대 정보서비스팀 부장

[ 詩를 읽는 아침 ]

• 홍해리 <가을 들녘에 서서>
- 경상일보 2014.11.13.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반에 반도 못보고 반에 반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은 모든 걸 떨구고 난 뒤에야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둥글게 보이던 나무가 예리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갖가지 형색으로 눈길을 끌던 풀꽃들이 누렇게 마를 때야 동색의
집단이었던 것도 알게 됩니다.
버리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은 순환을 하지만
사람은 평생을 채우려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볍게 떠나야할 때가 왔는데도 놓지 못하고 억지 연명을 합니다.
자연의 일부라는 걸 망각한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 박정옥 | 시인

 

• 홍해리 <가을 들녘에 서서>

- 문화저널21 2019. 9. 23.

 

 “가을 들녘”을 천천히 걸으면 이름도 모르는 풀들이 가무레한 씨앗들을 가득 매달고 있다. 한 여름 치열했던 꽃 시절을 “다 주어버리고” 얻은 결실이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연은 집착하지 않는다. 순리를 따라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스스로 알고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왜 집착할까? 아마도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집착할 만큼 좋은 것이거나,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거나, 집착하면 그럴만한 혜택이나 보탬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심리 속에는 낮은 자존감을 보상 받고 싶거나, 불안이나 수치심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방편이거나, 상처받은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이 내포 되어 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아무리 집착해도 자신의 낮은 자존감은 치유되지 않으며, 불안도 수치심도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연민은 방어기제인 자기 합리화(rationalization)를 과도하게 사용하게 되어 결국엔 무기력증, 신경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집착은 우리 삶을 제 자리 걸음하게 하거나 퇴보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집착했던 것들도 언젠가는 변질되고 소멸되어 없어진다. ‘사람이 재물과 색(色)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 번 입에 댈 것도 못되는데 그것을 핧다가 혀를 상한다’ 고 했다. 집착 때문에 ‘마음도 한자리에 못 있는 날’ 천천히 가을 들녘을 걸어볼 일이다. 풀씨를 가득 매달고 있는 저 풀들도 겨울이 오기 전, 흙에게 풀씨를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 “눈물겨운 마음자리도/스스로 빛이 나”는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할 것이다. 

 -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홍철희 작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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