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망도投網圖』1969

<詩> 꽃밭 이야기

洪 海 里 2005. 10. 28. 10:12

꽃밭 이야기

 

洪 海 里

 

 

처음
내게 온 그는
마악 잠깬 첫새벽의 꿈
새끼 비둘기의 황금부리로
소녀의 가슴을 파는 순수
태양을 향한 순금의 아침
그것은 원시의 뜻이었다.

다음
내가 그에게 눈짓을 했을 때
그는 가는 현악기의 울림
기갈에 우는 새의 날개짓
사랑에 질근이는 나약한 호흡
실내악의 잔잔한 흐름
강물의 조용한 율동이었다.

마지막
내가 그에게 머물렀을 땐
돌연한 바람에 감기는 안개
그곳에서 찢어지는 내심의 울음
기인 겨울의 인내 속에서
밤새 울어대는 두견새의 넋
생성의 안개가 온 세계를 덮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난 그는
가슴에 순수의 불을 밝힌 연인
천년 원시림의 햇살처럼 피는
순결한 웃음
웃음의 숲 속에서
밤을 새우던 작은 새가
해 떠오는 찬란한 아침에 잠깨어
밤새 부서진 햇발을 주어 나른다.

그러나
이다음 내 앞에 나타날 그는
짙은 안개의 늦가을 과원
무언의 입술
이제는 중량이 늘은 몸뚱어리로
한가롭지 못한 사색의 이마를
받치고 섰는 의지
물오른 가슴에 깊은 포옹으로 익힌
달디단 태양의 밀어
숨찬 여름의 압박감을 벗어난
밝은 노랫가락.

내가 마지막
만날 그는 한밤 창가에 흐르는 바람
자그만 하늘과 땅을 싣고
속으로 문 두드리며 가는
영원한 향수
그것은 하나의 결정
영원한 미완성 회화집이다.

 

-『投網圖』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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