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시> 첫여름

洪 海 里 2005. 11. 9. 04:45
첫여름
홍해리(洪海里)
 

비가 내리고
드디어 비가 내리고
나에게 여름이 왔다.

봄은 봄대로 꽃이 피었으나
나는 향기로운 꽃의 둘레
그 머얼리서 서성이고 있었다.

젖은 골목을 찾아
젖은 꿈의 뒷길로 가는 어귀에서
식은 땀을 떨구며 헤매고 있었다.

더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여러 갈래로 난 길목에 와서
스물 몇 해를 헤아리고 있었다.

먼 하늘과 막막한 벌판과
어둔 밤과 아픈 눈물 속을
혼자서 걷다 걷다 지친 후에,

첫여름은 왔다
가슴 홀로 뛰고 입술이 타는
꽃이 꽃다이 보이는.

비가 내리고
드디어 비가 내리고
나에게도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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