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갈대

洪 海 里 2006. 5. 1. 18:24

갈대

洪 海 里

 


올 때 되면 올 데로 오고
갈 때 되면 갈 데로 가는
철새들이 오는 걸 미리 알고
무리 지은 갈대는 꽃을 피워
하늘을 향해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저 새들의 날개짓이
갈대를 따뜻하게 했으니
갈대는 스스로 몸을 꺾어
날개죽지에 부리를 묻고 밤을 지새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고
강물은 새들의 시린 꿈이 안스러워
소리 죽여 울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깊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여
바람소리에 흔들리지 마라
허기진 네 영혼이 이 밤을 도와
강물 따라 등불 밝힌 마을에 닿을 때면
잠든 새들을 지켜 주던 별들은
충혈된 눈을 이슬로 닦으며 스러지고
갈대는 사내처럼 떠나버린 새들이 그리워
또 한 해를 기다리는 것이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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