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호박 홍 해 리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개화開花 개화開花 홍 해 리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들 마음 빼앗겨..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박태기꽃 터지다 박태기꽃 터지다 洪 海 里 누가 태기라도 쳤는가 가지마다 펑펑펑 박 터지는 소리 와글와글 바글바글 우르르우르르 모여드는 시뻘건 눈들 조팝나무도 하얀 수수꽃다리도 휘청거리는 봄날 "뻥이야!" "펑!" 먼 산에 이는 이내.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머나먼 슬픔 머나먼 슬픔 홍 해 리 나무들은 꼿꼿이 서서 꿈을 꾼다 꿈에 젖은 숲은 팽팽하다 숲이 지척인데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적막에 들지 못하고 지천인 나무들에 들지 못하고 눈을 들면 푸른 게릴라들이 국지전 아닌 전면전을 감행하고 있다 녹음 아래 노금노금 가고 있는 비구니의 바구니 ..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어둠의 힘 어둠의 힘 홍 해 리 어둠이 빛인 줄 안다면 세상을 밝히는 것은 빛이 아니라 빛의 밝은 힘이 아니라 어둠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되리 나무도 하늘 가까이 가는 것은 우듬지이지 우듬지에 별이 걸리고 별이 너를 비춰주고 있지만 결국 하늘에 가 닿는 것은 우듬지가 아니라 뿌리다 뿌리가 나..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석류石榴 / 해설 : 김석훈(시인 · 평론가) 석류石榴 洪 海 里 줄 듯 줄 듯 입맛만 다시게 하고 주지 않는 겉멋만 들어 화려하고 가득한 듯 텅 빈 먹음직하나 침만 고이게 하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 입술 뾰족 내밀고 있는. * 사물 혹은 여인의 향기 사물은 마력의 산물이다. 사물은 하나의 우발적 생산물이 아니다. 사물은 읽기다. ..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여자를 밝히다 여자를 밝히다 홍 해 리 여자를 밝힌다고 욕하지 마라 음란한 놈이라고 관음증 환자라고 치부하지 마라 입때껏 치부를 한 것도 없고 드러낼 치부도 하나 없다 여자를 활짝 핀 꽃 같이 밝혀주는 것은 무엇일까 환한 대낮같이 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둔 길을 갈 때 등롱을 들 듯 꽃이라도..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파문波紋 파문波紋 홍 해 리 1 나무는 서서 몸속에 호수를 기른다 햇빛과 비바람이 둥근 파문을 만들고 천둥과 번개가 아름답게 다듬어 밖으로 밖으로 번져나간다 파문이 멎으면 한 해가 간 것이다 2 잎 나고 꽃 피어 열매를 맺는 동안 속에서는 물이랑을 짓다 열매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나무는 ..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겨울 빗소리 겨울 빗소리 홍 해 리 혼례만 올리고 시댁으로 가지도 못하고 과부가 된 어린 각시, 마당에 울고 있는 겨울 빗소리 차라리 까막과부望門寡婦라면 덜할까 청상靑孀이면 더할까, 온종일 듣고 있는 겨울 빗소리 * 친정집 마당에서 혼례만 올리고 시집에는 가지도 못하고 홀로 된 여인을 마당..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귀북은 줄창 우네 귀북은 줄창 우네 홍 해 리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