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감옥 황금감옥 洪 海 里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 듯, 후훗 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세란헌洗蘭軒에서 세란헌洗蘭軒에서 홍 해 리 난잎에 고요처럼 내려앉는 먼지를, 마음으로 씻어주는 새벽녘, 때맞춰 화로에선 차茶ㅅ물이 끓는데, 화선지에 묵향墨香은 번지지 않고, 가슴에 그리움만 고요처럼 쌓이네.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시간을 찾아서 시간을 찾아서 홍 해 리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 번지 신사년 오월 초엿새 23시 05분 스물 세 해 기다리던 아버지 곁으로 어머니가 가셨습니다 들숨 날숨 가르면서 저승이 바로 뒷산인데 떠날 시간을 찾아 네 아들 네 딸 앞에 모아 놓고 며느리 사위 옆에 두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가는..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옥쇄玉碎 옥쇄玉碎 洪 海 里 곡우穀雨와 입하立夏 사이 잔마다 꽃배 띄우고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사이 청매실 다 땄는데, 소서小暑에 찬물로 목물하고 평상에 누으니 노랗게 익은 매실 한 알, 뚝, 이마에 청매실 하나 열렸다. 풍경風磬이 절로 울어 붕어가 온몸으로 웃고 있다 꽃 피고 열매 맺고 떨..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달빛 속 풍경 달빛 속 풍경 홍 해 리 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챙이 넓은 모자 위로 달빛이 칼날같이 쏟아지고 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잘생긴 말 한 마리 서리꽃 속을 가고 있다 바다를 버리고 온 파도가 흰 갈기를 날리며 온 섬을 휩쓸고 있다 달빛은 눈꽃 위로 내리꽂히고 온몸에선 단내가 난다 네 모..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이 맑은 날에 이 맑은 날에 홍 해 리 절망도 빛이 돌고 슬픔도 약이 되는 이 지상에 머무는 며칠간 내 곁을 꽃자주빛 그리움으로 감싸주는 그대의 눈빛 아픔도 허기가 져 칼날로 번쩍이는 이 맑은 가을날 그리워라 아아, 한줌의 적립赤立!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꿈 1 꿈 1 홍 해 리 삼악산三嶽山 아래 구공사究空寺 골방에서 몇 십 년을 묵었다 다시 한 살이 되니 허공중에서 헤엄치듯 하늘을 날게 되었다 엊저녁에도 허공세상에서 놀았다 『걸어다니는 물고기』의 등을 타고 『구름 위의 다락마을』에도 놀러가 은자隱者 만나 이슬 한 잔, 매화꽃에 취해..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종鐘이 있는 풍경 종鐘이 있는 풍경 홍 해 리 1 종은 혼자서 울지 않는다 종은 스스로 울지 않고 맞을수록 맑고 고운 소리를 짓는다 종鐘은 소리가 부리는 종 울림의 몸, 소리의 자궁 소리는 떨며 가명가명 길을 지우고 금빛으로 퍼지는 울림을 낳는다 2 종은 맞을수록 뜨거운 몸으로 운다 나의 귀는 종 소리..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가을 엽서 가을 엽서 洪 海 里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
흔적 흔적 홍 해 리 창 앞 소나무 까치 한 마리 날아와 기둥서방처럼 앉아 있다 폭식하고 왔는지 나뭇가지에 부리를 닦고 이쪽저쪽을 번갈아 본다 방안을 빤히 들여다보는 저 눈 나도 맥 놓고 눈을 맞추자 마음 놓아 둔 곳 따로 있는지 훌쩍 날아가 버린다 날아가고 남은 자리 따뜻하다. 詩選集『비타민 詩』2008 200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