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새·섬·그림·여행·음식 249

에듀아르 마네 /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힘든 하루의 얼굴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0-12-10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에두아르 마네는 단 한 번도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인상주의자들의 리더였다. 생전에는 파리 미술계의 조롱과 비난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사후엔 ‘인상주의의 아버지’이자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마네는 평생 9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그림이 그가 남긴 최후의 걸작이다. 그림 속 배경은 파리 최고의 사교장이었던 ‘폴리베르제르’ 카바레다. 춤과 오페라, 서커스 공연 외에도 매춘으로 유명한 고급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림 모델은 쉬종이란 여성으로 실제 이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다. 가슴까지 파인 몸에 딱 붙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펜던트와 코르사주로 멋을 냈..

탄자나이트

탄자나이트 18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에서 한 직원이 40캐럿의 탄자나이트로 만들어진 목걸이와 귀걸이를 소개하고 있다. 탄자나이트는 탄자니아 북부 국경지대에서만 산출되는 보석으로 다이아몬드보다 1000배 이상 희귀한 광물로 꼽힌다. 목걸이 가격은 12억 원, 귀걸이는 1억 원대에 이른다. - 동아일보 2020. 11. 19. 탄자나이트(tanzanite)

감히 웃은 죄 /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딸 쥘리를 안고 있는 자화상, 1786년. 감히 웃은 죄 아름다운 모녀의 초상화다. 엄마 품에 안긴 딸과 두 손으로 아이를 감싼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이 그린 이 그림은 따뜻한 모성애가 느껴지지만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왜였을까? 르브룅은 아버지가 화가여서 일찌감치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10대 초반부터 전문 초상화를 그렸고, 15세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할 만큼 돈도 충분히 벌었다. 19세에 파리 생뤼크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2년 후 화가이자 화상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림 실력뿐 아니라 미모와 패션 감각, 사교성까지 뛰어나 상류층 고객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곧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