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 13

우연 한 장

우연 한 장 洪 海 里  "아저씨, 미아5동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미아5동으로 가야지요!"머리 허연 노파가 길을 묻고내가 답한다 우이동솔밭공원 옆 골목길에서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아내도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떠났다몇 해 전 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아직도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지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니어느새 저녁 하늘이 나즈막이 펼쳐져 있네 그곳에는부디 길을 잃는 일이 없기를인생길이 미로라 하는데발길 가는 대로 가다 보면 끝이 있는 것인가.

《우리詩》2022. 12월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에서

♧ 나는 날마다 무덤을 짓는다 해가 지면 문을 닫고 하루를 접는다 하루는 또 하나의 종점 나는 하나의 무덤을 짓는다 문 연 채 죽는 것이 싫어 저녁이면 대문부터 창문까지 닫고 다 걸어 잠근 고립무원의 지상낙원을 만드노니 둘이 살다, 셋, 넷, 다섯, 이제는 다들 떠나가고 나만 혼자, 홀로, 살다보니 집이 천국의 무덤이 되었다. ♧ 단현斷絃 줄 하나 끊어지니 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 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 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 물 흐르듯 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 두 집 건너 살아라 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 노량으로 가야지. ♧ 적멸보궁 밤새껏 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 부산한 고요의 투명함 한 마리 까치 소리에 툭..

洪海里 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 발간 김창집 2021. 7. 19. 16:34 ♧ 아내 쓸쓸한 허공 나지막이 비상하던 날개 여린 새 한 마리 다 늦은 가을 저녁 어스름 내 가슴에 와 깃을 치고 있느니 젖은 자리 또 적시며 울고 있느니. ♧ 입춘 추위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어디 가고 싶냐 물어도 묵묵부답 조금 있다 또 문을 엽니다 밖에 나가고 싶냐 물어도 그냥 웃습니다 또 문을 열고 치어다봅니다 누굴 기다리느냐 물어 봐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또 다시 문을 열고 쳐다봅니다 속이 답답하냐 물어도 하늘만 바라보다 문을 닫습니다 입춘날 날씨 매섭게 찬데 어찌 봄이 오겠습니까? 문을 열면 칼바람만 제 세상인 듯 쩡쩡하니 밀려듭니다. ♧ 다저녁때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