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 14

우연 한 장

우연 한 장 洪 海 里  "아저씨, 미아5동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미아5동으로 가야지요!"머리 허연 노파가 길을 묻고내가 답한다 우이동솔밭공원 옆 골목길에서길을 잃고 쩔쩔매고 있었다아내도 길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다 떠났다몇 해 전 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아직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지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니어느새 저녁 하늘이 나즈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는부디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일이 없기를,인생길이 막막한 미로라 하지만발길 가는 대로 가다 보면 끝이 있는 것인가.- 월간 《우리詩》 2024. 7월호.

《우리詩》2022. 12월호 '홍해리 신작 소시집'에서

♧ 나는 날마다 무덤을 짓는다 해가 지면문을 닫고 하루를 접는다 하루는 또 하나의 종점나는 하나의 무덤을 짓는다 문 연 채 죽는 것이 싫어저녁이면 대문부터 창문까지 닫고 다 걸어 잠근 고립무원의지상낙원을 만드노니 둘이 살다, 셋, 넷, 다섯,이제는 다들 떠나가고 나만 혼자, 홀로, 살다보니집이 천국의 무덤이 되었다.  ♧ 단현斷絃 줄 하나 끊어지니천하에 소리가 나지 않네 내 귀가 먹은 것인지내일 없는 어제가 가슴을 치니 잠이 안 와 괴롭고잠들면 꿈으로 곤비하네 말이 안 되는 세상이라도물 흐르듯바람 일 듯 영혼은 이제 유목민으로나두 집 건너 살아라산산 강강 살아라 그렇게나 가야지노량으로 가야지.  ♧ 적멸보궁 밤새껏 폭설이 내린이른 아침부산한 고요의 투명함한 마리 까치 소리에툭,눈이 떨어져 내리는영원한 처..

洪海里 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 발간 김창집 2021. 7. 19. 16:34 ♧ 아내 쓸쓸한 허공 나지막이 비상하던 날개 여린 새 한 마리 다 늦은 가을 저녁 어스름 내 가슴에 와 깃을 치고 있느니 젖은 자리 또 적시며 울고 있느니. ♧ 입춘 추위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어디 가고 싶냐 물어도 묵묵부답 조금 있다 또 문을 엽니다 밖에 나가고 싶냐 물어도 그냥 웃습니다 또 문을 열고 치어다봅니다 누굴 기다리느냐 물어 봐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또 다시 문을 열고 쳐다봅니다 속이 답답하냐 물어도 하늘만 바라보다 문을 닫습니다 입춘날 날씨 매섭게 찬데 어찌 봄이 오겠습니까? 문을 열면 칼바람만 제 세상인 듯 쩡쩡하니 밀려듭니다. ♧ 다저녁때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洪 海 里     뚝!                                        * 여연 시인 페북에서 옮김. * 사실 제주에서 동백꽃은 이르면 11월말에 피어나기도 하는데, 꽃가루받이 수정이 끝나면 임무를 끝냈다는 듯이 ‘뚝!’ 소리 없이 지고 만다. 그러나 한겨울 추울 때는 매개 곤충(벌)이나 새(동박새)들이 안 와, 기온이 내려가면 꽃잎 끝이 얼어서 시들고 말라버릴 때까지도 임을 기다린다.   요즘은 여러 가지 원예종 동백이 들어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가 칙칙하게 말라 비뚤어진 채로 나무에 달려 있는 것도 있고, 가을부터 봄까지 쉴새없이 피는 것들도 많다. 반면, 날씨가 따뜻해서 제때 후드득 떨어지는 재래종 동백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https://jib..

상사화相思花

♧ 상사화相思花  洪 海 里    내가마음을 비워네게로 가듯너도몸 버리고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너는내 자리를 비우고나는네 자리를 채우자오명가명만나지 못하는 것은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마음의 끝이 지고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그리움은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보라저 물이 울며 가는 곳멀고 먼 지름길 따라곤비한 영혼 하나낯설게 떠도는 것을!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홍해리 시선집『洪海里는 어디 있는가』(도서출판 움, 2019)에서                                          * 사진 : 제주상사화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 싸이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