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순 15

가을의 무게

가을의 무게 洪 海 里  툭,투욱,투둑,떨어지는 저 생명들영원으로 가는 길의 발자국 소리이 가을엔 죽음 같은 것 생각지 말자훤한 대낮에도 별이 보이고바람결마다 무늬 짓는데모든 목숨들이잠깐,아주 잠깐,투명한 소리로 울다일순,서쪽 하늘에 하얗게 묻히고 있다기인 적멸의 계절이 오리라내던져진 빈 그물처럼침묵에 귀를 기울이라영원으로 가는 길은깊고조용하다맑은 영혼으로 닦이고 닦인깊고 조용한 목숨,무겁고 가볍다.- 시집 『푸른 느낌표!』(우리글, 2006)

톺고 톺아보고

톺고 톺아보고 洪 海 里  국밥도 몇 차례 토렴을 하고 나야따뜻한 진국이 입 안에 돌 듯 헛물로 메케하던 시휘영청 시원스런 세상으로 들려면늙마의 괴나리봇짐만큼이라도맛을 살려내야지 쓸데없는 짓거리 작작 하고씻나락 같은 시어 잘 불려 놓았는데"우리 밥 한번 먹자""언제 술 한잔하자" 하는 소리 듣지 않도록 너는 네 혀로 말하고나는 내 귀로 듣는 세상 사는 일 참 아프지 않도록쓸쓸하지 않도록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 에 붙여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 에 붙여 洪 海 里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툭! 떨어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란 듯, 새가 날아갔다. * 왼쪽부터 청주 세광고 제자인 박흥순 화백과 이홍원 화백과 나. * '천진의 인상'(2003년) : 박흥순 화백의 작품

양 치는 시인 / 이동훈(시인)

양 치는 시인 이 동 훈  서울의 시수헌詩壽軒은시를 오래 쓰겠다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인데머물렀다 떠나는 사람 중에홍해리 시인과 박흥순 화가는 살림을 낸 것도 아니면서수십 년 동거하다시피 지내고 있다.어느 해 우연찮게 그 집에 들렀다가박흥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오래 보았다.신작로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어깨를 잇고양 떼는 저희들끼리 어깨맞춤하고양치기는 양 한 마리라도 길 밖에 날까 봐장대 잡고 뒤에서 따르는데다들 저녁밥 짓는 마을로 걸음이 바삐 움직인다.이웃 나라 천진에서 만났다는 양 떼 그림을 두고이웃 동네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백석 시인을 생각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문단에 한 개의 포탄처럼 내린 백석이정주, 서울, 도쿄, 통영, 함흥, 만주, 평양 다니며종당엔 그 험하다는 삼수에 갇혀 양치..

詩化된 洪海里 2021.10.25

<시> 양치는 시인 / 이동훈(시인) : <그림> 천진의 인상 / 박흥순(화가)

양 치는 시인 이 동 훈 서울의 시수헌詩壽軒은 시를 오래 쓰겠다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인데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 중에 홍해리 시인과 박흥순 화가는 살림을 낸 것도 아니면서 수십 년 동거하다시피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우연찮게 그 집에 들렀다가 박흥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오래 보았다. 신작로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어깨를 잇고 양떼는 저희들끼리 어깨맞춤하고 양치기는 양 한 마리라도 길 밖에 날까 봐 장대 잡고 뒤에서 따르는데 다들 저녁밥 짓는 마을로 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이웃 나라 천진에서 만났다는 양떼 그림을 두고 이웃 동네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 백석 시인을 생각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문단에 한 개의 포탄처럼 내린 백석이 정주, 서울, 도쿄, 통영, 함흥, 만주, 평양 다니며 종당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