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순 13

톺고 톺아보고

톺고 톺아보고 洪 海 里 국밥도 몇 차례 토렴을 하고 나야 따뜻한 진국이 입 안에 돌 듯 헛물로 메케하던 시 휘영청 시원스런 세상으로 들려면 늙마의 괴나리봇짐만큼이라도 맛을 살려내야지 쓸데없는 짓거리 작작 하고 씻나락 같은 시어 잘 불려 놓았는데 "우리 밥 한번 먹자" "언제 술 한잔하자" 하는 소리 듣지 않도록 너는 네 혀로 말하고 나는 내 귀로 듣는 세상 사는 일 참 아프지 않도록 쓸쓸하지 않도록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 에 붙여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 에 붙여 洪 海 里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툭! 떨어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란 듯, 새가 날아갔다. * 왼쪽부터 청주 세광고 제자인 박흥순 화백과 이홍원 화백과 나. * '천진의 인상'(2003년) : 박흥순 화백의 작품

양 치는 시인 / 이동훈(시인)

양 치는 시인 이 동 훈 서울의 시수헌詩壽軒은 시를 오래 쓰겠다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인데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 중에 홍해리 시인과 박흥순 화가는 살림을 낸 것도 아니면서 수십 년 동거하다시피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우연찮게 그 집에 들렀다가 박흥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오래 보았다. 신작로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어깨를 잇고 양 떼는 저희들끼리 어깨맞춤하고 양치기는 양 한 마리라도 길 밖에 날까 봐 장대 잡고 뒤에서 따르는데 다들 저녁밥 짓는 마을로 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이웃 나라 천진에서 만났다는 양 떼 그림을 두고 이웃 동네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 백석 시인을 생각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문단에 한 개의 포탄처럼 내린 백석이 정주, 서울, 도쿄, 통영, 함흥, 만주, 평양 다니며 종당엔 ..

詩化된 洪海里 2021.10.25

<시> 양치는 시인 / 이동훈(시인) : <그림> 천진의 인상 / 박흥순(화가)

양 치는 시인 이 동 훈 서울의 시수헌詩壽軒은 시를 오래 쓰겠다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곳인데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 중에 홍해리 시인과 박흥순 화가는 살림을 낸 것도 아니면서 수십 년 동거하다시피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우연찮게 그 집에 들렀다가 박흥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오래 보았다. 신작로 미루나무는 미루나무끼리 어깨를 잇고 양떼는 저희들끼리 어깨맞춤하고 양치기는 양 한 마리라도 길 밖에 날까 봐 장대 잡고 뒤에서 따르는데 다들 저녁밥 짓는 마을로 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이웃 나라 천진에서 만났다는 양떼 그림을 두고 이웃 동네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 백석 시인을 생각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문단에 한 개의 포탄처럼 내린 백석이 정주, 서울, 도쿄, 통영, 함흥, 만주, 평양 다니며 종당엔 그..

인연

인연 - 박흥순 화백에게 洪 海 里 그는 까까머리 미소년 나는 30대 훈장이었다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지금은 백발에 주름도 비슷한 친구 야동도 함께 보며 킬킬거리고 술잔도 주고받는 사이 세월이 거리를 먹어 치워 이제 맞먹는 처지, 이렇듯 인연이란 뜻 밖에서 이루어지고 너와 내 안에서 피는 한 송이 꽃 그것은 시간이 준 소중한 선물 사이라는 말은 멀다는 뜻이 아니라 가깝다는 말 가깝다와 멀다는 같은 말이라서 사이가 더 가까워지면 새가 난다. * 짧은 생각 삶이란 무엇인가? 늘 무엇인가를 삶는 일이요, 내가 세상에 삶아지는 과정이다. 스승과 제자란 삶고 삶아지는 과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 관계가 아닐까 한다. 박흥순 화백은 청주 세광고등학교의 제자(1972년 졸업)이다. * 백작약 : http://blo..

<시> 추락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에 붙여 洪 海 里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툭! 떨어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란 듯, 새가 날아갔다. * 「천진의 인상」(2003년) : 박흥순 화백의 작품. (2008. 8.) 시집『독종』(2012, 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