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시> 귀가 말을 한다

洪 海 里 2008. 3. 6. 12:14

 

귀가 말을 한다


洪 海 里

 

 

밖에 나가 머무는 동안
귀를 곧추세우고 살다 보니
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다
절벽인 귀가 보배일 리 없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하고
분식집 개라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들을 말 안 들을 말 대책없이 듣다 보니
귀가 말을 할 만도 하다
귓바퀴만 맴돌며 맴맴거리던 말들
의미와 무의미로 따로 놀다
어떤 말은 고막을 울리고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뒷골목에 허섭스레기로 쌓이지
듣지 못하는 말은 닫지 못하는 말처럼 답답하다
말이란 달리는 말발굽 소리만큼
시원해야 하는 법인데
귓전만 뱅뱅 돌며 귀청을 때리는
아 다르고 어 다른
네가 한 말이 한 말이나 되어도
귓속에 쌓이면 말무덤이 된다
함부로 말 꼬리를 잡지 마라
뒷발질에 차이면 말꼬리만 흐려진다
말이 잘 썩어 향기로울 때
말이 거미에 붙어 말거미가 되듯
말은 왕이 되기도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죽은 말
하늘도 무겁고 땅도 캄캄하다
꽉 막힌 막다른 골목길
무작정 쳐들어오는 이국의 말발굽 소리
고막을 울려 귀가 말을 한다.

                        -『시와 사람』(2008. 여름호,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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