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집『금강초롱』(2013)

난초꽃 한 송이 벌다

洪 海 里 2009. 2. 3. 15:27

난초꽃 한 송이 벌다

 

洪 海 里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
꽃 한 송이 소리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
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우리가 꽃나라에
정말 닿을 수 있겠으랴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면서
목숨은 피어나는데 ……,

참 깊은 그대의 수심水深
하늘못이네.

우리가 본시부터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 아니었던가
또는 불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물빛과 하늘빛 속에는 불빛도 피어나 황토빛
내음까지 실렸습니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처서가 돌아
와 산천초목들이 숨소리를 거르는데 늦꽃 소심 한 송
이 피어 깊이깊이 가슴에 들어와 안깁니다.

푸르르르르 백옥 같은 몸을 떨며 부비며 난초꽃 한 송
이 아프게 피었습니다.

 

(시집『愛蘭』1998)

'꽃시집『금강초롱』(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소화  (0) 2009.02.03
지는 꽃을 보며  (0) 2009.02.03
배꽃  (0) 2009.02.03
유채꽃 바다  (0) 2009.02.03
갯쑥부쟁이  (0) 2009.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