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시> 적막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101

洪 海 里 2014. 4. 29. 05:11

적막한 봄날

- 치매행致梅行 · 101

 

洪 海 里

 

 

 

춘삼월 봄이왔다고

바람이 양지쪽에 수줍게 핀 양지꽃을 안고

하늘이 노랗게 물이 들도록 비벼대고 있다

뭘 보겠다고 저 난리들인지

모두 눈을 있는 대로 또랑또랑 뜨고

지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밑이다

밑구멍에는 뭔가 은밀히 숨겨진 게 있다

눈석임물에 발을 씻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분홍여우 노랑여우

깔딱고개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소나무가 푸른 눈썹 씀벅이며 내려다보고 있다

봄은 눈뜬 장님들이 헤매는 미궁의 계절

몸과 마음 사이로 난 끝없는 미로에서

볼을 꼬집어대고 몸뚱어리를 그냥 던진다

아지랑이도 몸부림치느라 정신이 없다

아스라해지다 어스레해지다 해가 진다

모두들 마디마디 아파서 악을 쓰고 있다

말없이 말하는 게 꽃이고 나무라는 자연이다

양수가 터지고 밀려오는 풀소리 쓰나미

지상을 푸르게푸르게 덮치고 있다

봄이 왔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잔인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는

춘삼월 봄이 왔다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