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한치 앞이 어둠 - 치매행致梅行 · 294

洪 海 里 2017. 10. 20. 16:42

한치 앞이 어둠

-치매행致梅行 · 294


洪 海 里



이제는 신발장이 주인을 찾지 않습니다

퍼니 놀면서도

구두 운동화 등산화가 늙어갑니다


옷장도 주인의 얼굴을 잊었습니다

줄줄이 걸려 있는 사시사철의 옷들

문도 열어 보지 않습니다


부엌도 주인의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소마소마 타오르던 불길도

숨을 놓고 말았습니다


뜰도 주인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노량으로 자라 피우던 꽃들

하나 둘 다 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한치 앞이 거나한 어둠이라

몸 하나 거누지 못하는 아내의 내일

거늑한 겨울 저물녘이 짙어갑니다.



* 박흥순 화백.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