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찍는 기계
- 치매행致梅行 · 346
洪 海 里
"마누라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벽돌 박듯 시를 찍어내냐?"
그래 이런 말 들어도 싸다
동정심이 사라진 시대
바랄 것 하나 없는 세상인데
삼백 편이 넘는 허섭스레기
시집『치매행致梅行』1, 2, 3집
아내 팔아 시 쓴다고
욕을 먹어도 싸다 싸
나는 기계다
인정도 없고 사정도 없는
눈도 없고
귀도 없는
무감동의 쇠붙이
싸늘한 쇳조각의 낡은 기계다
집사람 팔아 시를 찍어내는
냉혈, 아니 피가 없는
부끄러움도 창피한 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시를 찍는 기계다, 나는!
- 포켓프레스 2019. 12. 23. 게재.
* 감상.
화사하던 시절에는 눈이 멀었지. 이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서질 것 같아 차라리 눈을 감네. 눈을 감으면, 말 없는 말이 당신
얼굴에 피어나. 내게 들려주는 말을 받아적네. 시를 쓰면, 인정 없는
세상도 감동 없는 세상도 다 지워져 …. 아니 그보다 먼저, 나의 당신이기에
쓰고 당신의 나이기에 쓰고.
이렇게 시를 쓰지 않으면 우리 존재는 헛것이야. 남에겐 어떨지
몰라도 내게는 가장 귀한 당신을 쓰네. 그러니까 당신 없으면
시도 없어. 어느덧 우리 생은 저녁노을로 기우는 꽃, 지는 꽃에
둔 마음은 조급하지. 세월의 한숨을 덜다가 문득 당신의 속삭임이
사라질까 얼른 주워 적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지, 시인은!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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