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시인의 가을꽃 시편 / 김창집(작가)

洪 海 里 2019. 10. 27. 15:37



억새

 

사자 떼 은빛 갈기

 

산신령의 흰 눈썹

 

새들은 날아가다 눈을 씻고 보고

 

바람도 이를 드러내 허옇게 웃고.



    

 

 


용담꽃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

*용담의 꽃말 

  

    

 

 


갯쑥부쟁이

 

눈 속에서도 자주꽃을 피우고


땅에 바짝 엎드려 있던


계집애, 잊었구나, 했더니


아직 살아있었구나,


이 나라 남쪽 바다 우도牛島 기슭에.   

 


 

 

금강초롱

 

1

초롱꽃은 해마다 곱게 피어서

 

금강경을 푸르게 설법하는데

 

쇠북은 언제 울어 네게 닿을까

 

내 귀는 언제 열려 너를 품을까

 

2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층꽃풀탑

 

탑을 쌓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도 간절하면 몸이 흔들려

한 층 한 층 탑사塔寺를 짓는다.

층꽃나무를 보라,

온몸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저 눈물겨운 전신공양.

해마다 쌓고 또 허물면서

제자리에서 천년이 간다.

나비가 날아와 몸으로 한 층 쌓고

벌이 와서 또 한 층 얹는다.

 

스님은 어디 가셨는지

달빛 선정禪定에 든 적멸의 탑,

말씀도 없고 문자도 없는

무자천서無字天書 경전 한 채.

    

 

 


갈대

 

올 때 되면 올 데로 오고

갈 때 되면 갈 데로 가는

철새들이 오는 걸 미리 알고

무리 지은 갈대는 꽃을 피워

하늘을 향해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저 새들이 날갯짓이

갈대를 따뜻하게 했으니

갈대는 스스로 몸을 꺾어

날갯죽지에 부리를 묻고 밤을 지새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강물은 새들의 시린 꿈이 안쓰러워

소리죽여 울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깊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여

바람소리에 흔들리지 마라

허기진 네 영혼이 이 밤을 도와

강물 따라 등불 밝힌 마을에 닿을 때면

잠든 새들을 지켜 주던 별들은

충혈된 눈을 이슬로 닦으며 스러지고

갈대는 사내처럼 떠나버린 새들이 그리워

또 한 해를 기다리는 것이다.

    

   *홍해리 꽃시집 금강초롱(우리시인선 030, 도서출판 움, 2013.)에서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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