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신작시집

洪 海 里 2019. 10. 30. 05:36

< 《우리詩》 2019. 12월호 신작 소시집> 

 

  시인의 편지 9

 

洪 海 里

 

 

 

산만刪蔓하옵고,

일백오십 편의 시로 시집 한 권 엮었습니다

정가, 거금 15,000원정

편당 가격 일백 원

박리 다매薄利多賣로 내놓아도

팔리기는커녕

파리만 날리고 있는

먹지 못하는 밥이 되어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결국,

나는 일백 원짜리도 못 되는 시인임을 시인합니다

가슴으로 보고 발로 쓰는 시를 위하여

산말을 잡아 방목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제,

풀밭에 나가 딱따깨비 메뚜기 방아깨비 베짱이

철써기 풀무치 여치 귀뚜라미와 친구 할까 봅니다

그 애들이 불러 주는 노래나 필사하면서

풀꽃과 놀다 보면

팔도에 솥 걸어 놓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에게 파리 발 드리는 일은 없겠습니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또 문안드리겠습니다.

 

2015년 한여름날

북한산 우이동 골짜기에서,

洪海里 배상

 

 

정곡正鵠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들린다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죽순시학

 

 

  

죽순은 겨우내 제 몸속에 탑을 짓는다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물탑이다

봄도 늦은 다음 푸른 비가 내려야 대나무는

드디어 한 층씩 올려 탑을 이룬다

때맞게 꾀꼬리가 뒷산에 와

아침부터 허공중에 금빛 노래를 풀면

대나무는 칸칸마다

질 때도 필 때처럼 선연한

동백꽃이나 능소화 같은 색깔의 소리를 품어

드디어 빼어난 소리꾼이 된다.

 

숨어 사는 시인이 시환詩丸을 물에 띄우듯

대나무는 임자를 만나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니

산조니 정악이니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

몇 차례 겨울을 지나 대나무가 되고 난 연후의 일이다. 

 

 

  

연필로 쓰는

 

 

 

 이슥한 밤

정성스레 연필을 깎을 때

창밖에 눈 내리는 소리

연필을 꼭꼭 눌러 시를 쓰면

눈길을 밟고 다가오는

정갈한 영혼 하나

하늘이 뿌리는 사리 같은 눈

발바닥으로 문신을 박듯

사각사각 사각사각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어느새 희번하니 동이 트고

냉수 한 대접의 새벽녘

드디어,

하얀 종이 위에 현신하는

눈매 서늘한 한 편의

 

 

 

한 줌의 비애

 

 

 

때 씻어낼 두 말의 물과

마음 닦을 비누 일곱 개의 지방과

글 쓸 연필 아홉 자루의 연과

시의 방 한 칸을 바를 석회와

불 밝힐 성냥개비 2,200개의 인과

방 소독할 DDT를 만들 유황과

뼈 흔들리지 않게 칠 못 한 개의 철로

평생을 수리하며 사는,

 

유한 임대로 빌려 살고 있는 집과

빨아 널지 못하고 입고 사는 옷과

남은 향으로 싸목싸목 지는 꽃과

쓰다 말고 놓아둔 미완성의 시와  

길 없어 길 찾아 홀로 가는 길인,

 

나의 몸은,

한 줌의 비애

이것밖에 안 되는

텅 빈 

 

 

 

를 찾아서

 

 


일보 일배 한평생

부처는 없고
연꽃 속

그림자 어른거릴 뿐.

풍경 소리 천릿길

오르고 올라
절 마당 닿았는가

보이지 않네

 

 

고독한 하이에나

 

 


고독한 하이에나 한 마리 

순식물성인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를 내고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리는

포유류 식육목의 청소부 하이에나

밤새도록 세렌 게티 평원을 홀로 헤매다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다 깨곤 하는

외로운 하이에나

한다한 턱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상상과 공상과 망상의 뼈

물고 뜯고 깨물다 그만 지쳐버린

은빛 하이에나의 굶주린 울음소리

처절한 하이에나는

꿈속에서도 썩은 고기와

사자가 먹다 버린 뼈다귀를 찾아

날이 하얗게 샐 때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

아침 해가 새빨간 혀를 내밀 때

살코기인 줄 알고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석 달 열흘 굶은 하이에나 껄떡대는 소리

아작아작 씹어대는 저 단단한 이빨과 턱

새벽잠을 잊은 나의 귀여운 하이에나는

백지 평원을 겅중거리며 헤매고 있다

명상의 맛있는 살코기를 찾아서

 

 

명창정궤明窓淨几

 

 

 

살기 위하여

잘 살기 위하여 쓰지 말고,

 

죽기 위해

잘 죽기 위해,

 

쓰고,

써라.

 

한 편 속의 한평생,

인생이란 한 권의 시집을 !

 


 

사물미학四物美學

  

 

  

둥둥 두둥둥 구름 흘러가는 소리

 

따닥따닥 따다닥 떨어지는 빗소리

 

징징 지잉징 바람은 울고

 

깨갱깨갱 깽깽깽 번개 치던 날,

 

 

 

한판 벌인 굿판이 흠뻑 젖은 것은

 

오십 년만이었다고 한다

 

북 과 장구와 징과 꽹과리

 

사물은 하나, 한 편의 시였다.


 

자기 또는

 

 

 

흙인 남자 물인 여자 서로를 다 녹이고 사뤄, 드디어

온몸이 클리토리스인 자기가 된다

 

눈빛만 닿아도 소리치고 손길 닿으면 자지러지는

너는 나의 비어 있는 호수

 

청자의 비색이나 백자의 순색으로 영원을 얻은

너는 나의 혼을 연주하는 바람의 악기

 

늘 네게 담겨 있어도 나는 가득 차지 못하는 하늘이어서

빈 마음으로 마른 입술을 네게 묻노니.

  

 

 

* 시작 노트 *

 

1.

시 한 편으로 평생 시인이 있다

천 편의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한 편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시인이 아니다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바른 시인이다

해마다 명편이 태어나기도 한다

태작만 태질치다 한살이를 끝내는 이도 있다

일평생을 한 해로, 아니면 일년을 한평생으로 살 것인가

좋은 시는 있어도 가장 좋은 시는 없다

시비 마라!

시비는 죽은 후에나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함부로덤부로 시인 행세 하지 마라.

 

2.

우주는 한 채의 작은 암자.

 

자연은 무량경전.

 

나는 그를 받아먹는 게른 식충이,

못난 시인.

 

3.

 편의 시는

칼과 같다.


잘못된 칼은 사람을 찔러

피를 흘리게 한다.


좋은 칼은 사람을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다.

그게

한 편의 좋은 .



                                                                                                                洪 海 里 시인

 

* 1969년 시집『투망도投網圖』를 내어 등단함.

 

* 시집으로『황금감옥』『독종毒種『금강초롱』『치매행致梅行

『매화에 이르는 길』『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외 다수와


 
시선집『洪海里 詩選』『비타민 詩』『시인이여 詩人이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가 있음.

 

 hongpoe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