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을 편지 가을 편지 洪 海 里 거대한, 투명한 공이 통, 통, 통, 튕기며 굴러가는 소리, 솔바람 냄새 난다고, 적어 보낸 오색 엽서를 또르르, 또르르르 읽고 있는 귀뚜라미,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달.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틈새 틈새 洪 海 里 어린 나무 짚으로 감싸주고 김장 담그고 메주 쑤고 문마다 창호지 꽃잎 넣어 바르고, 잠들던 어린 시절 장작더미 쌓인 돌담 지나 찬바람 문풍지 울릴 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지나면 창호지마다 배어오던, 햇볕의 따스함이여 내 마음의 틈새여!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나의 시는 나의 詩는 洪 海 里 북소리 한 자락 베지 못하는 녹슬어 무딘 칼, 이 빠진 칼 그 옆에 놓여 있는 네 마음 한 자락 베지 못하는.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민초의 꿈 民草의 꿈 洪 海 里 하루살이에게 내일이 있기나 하더냐 손바닥으로 가린 하늘이 있을 뿐 꽃 피고 새가 운들 배가 부르랴 저들도 마음 고파 피고 지는 걸 유한인 내가 허위허위 달려가 만나는 것은 무한인 너, 언제나 끈끈한 허무의 껍데기 바람이 일어 피우는 구름꽃 몇 송이 목 언저리 보일 듯 말 듯..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그물 그물 洪 海 里 어떤 자는 던지고, 어떤 이는 걸리고, 어떤 놈은 빠져나가는, 세상이라는 허방.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막막 막막 洪 海 里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막차가 떠난다 막차가 떠난다 洪 海 里 별이 우는 밤이면 막차가 떠난다 산도 울어 계곡 따라 메아리로 흐르고 달빛 속으로 스러져가는 들판의 벗은 바람소리와 함께 마음을 싣고 막차는 떠난다 기적을 울리지 않고 가는 길 눈물 같은 별이 하나씩 길 위에 내리고 새벽은 올 것인가 쓰리게 흐르는 저문 강물이여 밤이 무거워 비켜서지 못하는 나목들 가지마다 걸려 있는 안개, 텅 빈 들녘, 해 질 무렵, 넋, 열정, 상처와 환희, 떨어진 꽃잎, 그리고---- 모든 존재란 의미이고 이름일 따름 속절없이 피었다 지는 것이 꽃뿐이랴만 하늘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인지 상처 받은 별떨기가 찔레꽃으로 피어나는 여름이 봄보다 먼저 왔다 가고 나면 가을은 슬프고 겨울은 눈부시지 않더냐 오늘은 첫눈이 내리고 나는 새벽으로 가는 막차를 탄다.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화택 화택火宅 洪 海 里 꽃과 벌 사이 속절없어 꽃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한 줄 유서 날 가물어 황토 먼지 일어도 마음 젖어 무거운 길 대낮 햇살 속 하얀 찔레꽃 타는 입술 찍어 너는 물의 집 한 채 나는 불의 집 한 채 엮고 또 지우면서 봄날은 간다.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웃음의 둥근 힘 웃음의 둥근 힘 洪 海 里 웃음은 둥글다 살아 있는 원이다 둥근 파문으로 눈이 동그래지면서 얼굴마다 쌍무지개 뜬다 코가 벌죽벌죽 실룩거리다 입이 소리로 웃어 꽃을 피우고 귀가 시늉을 하고 있다 배꼽을 쥐고 웃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와 굴렁쇠가 되어 푸른 초원을 굴러가고 있다 주.. 시집『비밀』2010 2010.02.08
<시> 5월 한때 5월 한때 洪 海 里 땅속에서 눈을 또록또록 뜨고 있다 봄비 흐벅지게 내리면 단칼에 치고 오르는, 우후죽순雨後竹筍! 장봉長鋒에 먹물 듬뿍 찍어 허공 한 자락 일필휘지一筆揮之 일갈一喝하는 죽순의 붓을 보고, 갈 길이 천년이니 잠깐 쉬어 가라고 댓잎들 속삭이네 여백餘白 한 구석 비워 두라 하네. .. 시집『비밀』2010 201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