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1303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洪 海 里     뚝!                                        * 여연 시인 페북에서 옮김. * 사실 제주에서 동백꽃은 이르면 11월말에 피어나기도 하는데, 꽃가루받이 수정이 끝나면 임무를 끝냈다는 듯이 ‘뚝!’ 소리 없이 지고 만다. 그러나 한겨울 추울 때는 매개 곤충(벌)이나 새(동박새)들이 안 와, 기온이 내려가면 꽃잎 끝이 얼어서 시들고 말라버릴 때까지도 임을 기다린다.   요즘은 여러 가지 원예종 동백이 들어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가 칙칙하게 말라 비뚤어진 채로 나무에 달려 있는 것도 있고, 가을부터 봄까지 쉴새없이 피는 것들도 많다. 반면, 날씨가 따뜻해서 제때 후드득 떨어지는 재래종 동백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https://jib..

겨울 바다에 가서

겨울바다에 가서 洪 海 里 세월이 무더기로 지는 겨울바다 아득한 물머리에 서서 쑥대머리 하나 사흘밤 사흘낮을 이승의 바다 건너만 보네 가마득하기야 어디 바다뿐일까만 울고 웃는 울음으로 빨갛게 타는 그리운 마음만 부시고 파도는 바다의 속살을 닦으며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고 나는데…… 까마아득하기야 어찌 사랑뿐일까 보냐.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1994)

산책 1 · 2

* http://cafe.daum.net/duchon5292에서 옮김.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산책 · 2 / 洪 海 里 한발 한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

능소화

어느 집 담장을 넘어서 능소화가 피었다. 능소화가 피어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빗속에 뚝뚝 져 내리는 주황색의 꽃잎은 선비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해서 옛날 양반집 뜰 안에 심었던 꽃이기도 하다. 담장을 넘어 온 능소화의 모습이 마치 구중궁궐에서 궁 밖 세상이 그리워 까치발로 담장 밖을 내다보던 궁녀의 모습을 닮았을까 얼핏 그런 전설을 들은 것도 같다. 늘어진 가지 끝에서 능소화는 피고 진다. 여름 땡볕아래 주황색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그네를 연상한다. 그 붉은 꽃잎에서 그네를 타는 황진이의 치맛자락을 생각한다. 화담 서경덕의 유혹을 생각한다. 그들 사이에 피어난 사랑이 한여름 땡볕아래 타는 듯 피어 화르르 일었다가 화르르 꽃처럼 졌다면 능소화는 간절하고 정열적인 꽃이 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