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팥배나무 열매가 이름을

洪 海 里 2007. 12. 5. 08:33

 

 

지난 일요일, 큰도리미 능선을 돌다가 중간쯤에서 이 나무 열매를 만났다.

이 나무는 7~8백m 고지 정도의 오름에 널려 있어 봄이 될 때까지 더러 남아 있다.

보통은 높은 곳에 달려 있어 떨어진 열매나 보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많이 남아 있어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다.


바깥바람이 꽤 쌀쌀해진 12월의 시커먼 겨울 하늘 아래

벌써 송년 스케줄이 잡혀 서서히 망년회가 시작되는데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시집 ‘우리 시(詩)’ 12월호가 도착되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시집을 보며 팥알같이 빨간 시 5편을 골랐다. 


팥배나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으로

물앵두나무, 벌배나무, 산매자나무, 운향나무, 물방치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15m 정도이고 작은 가지에 피목이 뚜렷하며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서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겹톱니가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흰색이며 6∼10개의 꽃이 산방꽃차례에 달리는데,

열매는 타원형이며 반점이 뚜렷하고 9∼10월에 홍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빈혈과 허약체질을 치료하는 데 쓰이며

그것이 붉은 팥알같이 생겼다고 ‘팥배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석류 - 홍해리


줄 듯

줄 듯


입맛만 다시게 하고

주지 않는


겉멋만 들어

화려하고


먹음직하나

침만 고이게 하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


입술 뾰족 내밀고 있는

 

 

 


♧ 작별 - 최석우


어느 강에선가 나를 놓았다

아침 안개 길을 물어

까치도 날아오지 못한 가을 아침이었다.


나를 두고 흘러가는 물결에

네가 어리어 있었다

나는 나와 마주서기 위해 멈출 수 없었다


나를 위한 말을 잃어버린 생(生)

소리 내어 부를 수 없기에, 나는

그 강마저 놓아야 했다


사랑, 그래도 내가 한 사랑이라

그리운 날 꽃잎 띄워 보낼 강 하나를

가슴에 열어야 했다

 

 

 

 

♧ 늦가을 - 윤정옥


산수유 붉은 열매

서리 덮여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네

윤칠월 무더위, 가을 가뭄 이겨내고

오롯이 가지마다 제 마음 달아놨는데

한가로운 바람만 흔들어볼 뿐

끝내 쳐다보질 않네

잊기 어려워

마음 깊은 동굴에 감춘 줄 알았더니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줄이야

오늘 서리에 내일 서리까지

자꾸 시간은 가고

붉은 마음 하나 둘 빠져 나가네

 

 

 


♧ 설익은 해 - 고미숙


어슷어슷

여문 하늘 썰어

자박자박

가마솥에 안친다


두꺼운 바람을 그어 지피는

아궁이 위로

펄펄펄

끓어 넘치는 눈보라


뜸들이기도 전에

난 또,

설익은 해만 삼키지

 

 

 

 

♧ 우회(迂廻) - 장태숙


살아야했다

짧지 않은 답보(踏步)의 시간

수직을 향한 타성은 물어뜯긴 자리에 묘비를 세우고

낮은 포복으로라도 기어가는 수평의 덩굴손

고양이 등처럼 둥글게 말아 숨죽여 뻗으면

경계의 끝에 걸리는 팽팽한 촉수

안간힘으로 목숨의 끈 움켜쥔다.


차가운 담장 따라 게걸음으로 걷는 등나무

‘도피가 아니야 우회의 선택일 뿐’ 


새순 밀어 올리던 날부터 손가락 관절들

싹둑싹둑 잘라먹던 옆집 개

쇠창살 담장은 완벽한 단절을 하지 못했고

녀석의 기습적인 공격을 방관했다

개의 사나운 이빨이 닿지 않는 경사진 땅을 가늠하는

저 등나무 덩굴손의 긴장된 집중

여린 나무에게도 눈이 있다

그 눈으로 모진 세상을 보고 생각을 만들고 걸음을 익힌다

깊은 숨 몰아쉬며 천천히

눈치 채지 않게

 

 

 

♬ Clayderman - 어린시절의 추억 Except for Monda - Lori Morgan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