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시인의 말> 시의 길, 시인의 길

洪 海 里 2012. 9. 13. 12:08

시의 길, 시인의 길

 

 

洪 海 里

 

 

  나는 1941년 10월 8일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번지에서 태어났다.

당시 남이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이듬해 호적에 올렸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1942년 8월 18일생으로 되어 있다. 그때는 태어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는 것을 봐 가면서 호적에 올렸던 것이다. 내 명이 길었는지 다음해까지 살아남아서 문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내 아래로 사내아이가 세 명 태어났고, 이어서 네 명의 딸이 줄을 이었다. 해서 나는 8남매의 소대장으로 이제껏 세상을 살아오고 있다. 아버지가 남이면에 근무해서 그리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40년대와 50년대가 그리 만만했겠는가? 모두들 보릿고개 아래서 허덕이며 땀을 흘려야만 했다.

 

  나는 식물성 시인이다. 그 힘든 시절 먹는 것이 모두 식물성이었으니 어찌 내가 식물성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신작로로 또는 산길로 다니면서 길가 밭에 들어가 따 먹은 목화 다래가 얼마이고 찔레순의 튼실한 줄기를 꺾어 껍질을 까고 대궁을 먹은 것이 얼마인지 모른다. 양지바른 곳에 솟아 있는 삘기, 보리밥나무 열매, 오디, 버찌, 서리 내린 다음에 고욤나무에 올라가 따먹은 고욤열매는 얼마나 달았던가. 소나무 새순을 꺾어 연한 송기를 벗겨 먹기도 하고 진달래꽃을 한 움큼씩 따먹은 것이나 아카시꽃을 훑어서 한 입씩 우물거린 적은 몇 번이었던가.

그것이 모두 요즘의 참살이 보약이었다. 이렇듯 꽃과 열매까지 먹고 자랐으니 내 몸속에는 풀이 자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게서 나오는 글이 식물성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꽃을 주제로 쓴 시작품만 해도 200편이 넘는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증조부모와 함께 삼대가 한 집에서 살다가 증조부가 돌아가시자 조부모와 합쳐 다시 삼대가 같이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향 남이 척산을 떠나 청주로 이사를 와서 중고교를 다녔다. 그래서 청주시 모충동 405번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가 세광고와 청주상고에서 9년 동안 근무하다 직장을 서울로 옮기기 전까지 내가 15년을 산 곳이다.

 

  나는 대학에서 김종길 교수에게 '19세기 영미시', '20세기 영미시'와 'T. S. 엘리엇'을 배우면서 시의 맛을 알았다. 어려서 한학을 한 안동 선비의 꼬장꼬장한 김종길(김치규 교수) 시인은 올해 86세인데 그때는 30대 후반의 청청한 학자요 시인이었다. 한편 국문과 교수였던 조지훈(조동탁 교수) 시인에게 '시론'과 '현대문학'을, 박성의 교수에게서 '가사문학'을 배웠다. 검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강의실을 드나들던 조지훈 시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분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4년 뒤인 1968년 지병으로 48세에 돌아가셨다. 이 세 분에게서 배운 것이 내가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이름만 듣고는 내가 여자인 줄 알았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해리’라는 이름은 서양에서도 많이 쓰이는 남자 이름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해리는 남자이다.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나 영국의 해리 왕자, 그보다도 대한민국에는 시인 洪海里가 있지 않은가. 洪海里라는 이름은 넓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정겨운 마을이란 뜻이다. 전북 고창에는 海里面이 있고, 전남 해남군에는 洪海里가, 해남읍에는 海里라는 마을이 있다. 나는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바다를 많이 동경했었다. 바다를 처음 보고 ‘바닷물이 정말 짠가?’ 하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기도 했다. 그것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1964년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서 1년간 산 것도 바다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해질녘에 바닷가에 나가 소주를 들이켜고 바라다본 석양의 풍경을 나는 다음과 같이 그려 보았다.

 

노을이 타는

바닷속으로

 

소를 몰고

줄지어 들어가는

 

저녁녘의

여인들

 

노을빛이 살에 오른

바닷여인들

               -「갯벌」전문

 

  이것이 시랍시고 처음으로 써 본 것이어서 인천신문에 보냈더니 바로 발표되었다. 처음으로 활자화된 글로 내가 암송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이 글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단지 바닷가 석양의 풍경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앞에 저녁녘의 물든 바다가 펼쳐져 보이지 않는가.

 

  1969년 시집『투망도投網圖』를 내어 문단에 나온 후 1970년대 초 충북에 동인지 하나 없음을 통탄하고 충주의 박재륜, 양채영 시인과 함께 충북 최초의 동인지『내륙문학內陸文學』창간을 주도하고 1972년 봄부터 73년까지 춘추로 4권의 동인지를 발간하고 나서 모든 걸 그곳 동인들에게 넘겨주고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1980년대 테마시를 특징으로 한 동인지인 진단시震檀詩에 가담하였고, 1986년 우이동에 살고 있는 이생진, 임보, 채희문, 신갑선 시인과 우이동시인들이란 동인을 결성하고 ‘87년부터 봄가을로 동인지를 ’99년까지 25집을 간행했다. (신갑선 시인은 6집까지 참여함)

  1987년 봄 동인지 창간호를 발간한 기념으로 '우이시낭송회'를 개최한 것이 현재의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우이시낭송회, 도서출판 움, 월간『우리詩』)의 모태가 되었다.

  현재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도봉도서관에서 시낭송회를 열고 월간시지『우리詩』를 발간하며 봄가을로 삼각산에서 시화제와 단풍시제를, 여름에 해변시인학교를 개최하고 있다.

 

  며칠 전 도서관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한 사십대 중반이 내가 들고 있는 시지를 보고, ‘요즘 우리나라 인구 10분의 1은 시집을 가지고 있지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우리나라에 시인이 많다는 말인지, 시집을 낸 사람이 많다는 말인지, 시를 가까이하는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언하면, 시를 공부하고 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조롱하는 말인지 시를 읽는 이들을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하찮은 시라도 쓰는 사람이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낫다. 시를 좋아해서 읽고 감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낫다. 우리나라 5천만 인구가 시집을 갖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라고 대답을 했다. 시집을 갖는다는 말은 모두가 시집을 낸다는 뜻도, 시집을 들고 읽는다는 말도 포함된 것이다. 우문현답인지 현문우답인지 나도 모르겠다.

 

  시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시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죽을 때까지도 그럴 리야 없겠지만 시를 다 알고 나면 시를 쓰지 않게 되든가 아니면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여자도 그렇다. 한 여자를 다 알고 나면 매력이 없어 더 보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게 될 것이다. 시를 다 알려고 하지 않고 아껴두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 할 여자이기 때문이다. 시를 다 안다면 무슨 재미로 시를 쓰겠는가.

 

  시는 어떤 것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시는 시시是是한 것이요, 시인은 그렇다고 시인是認하는 사람이어서 시인은 시로써 인류의 정신을 일깨워 나가는 시인是人이어야 한다. 시는 모든 문학의 꽃, 즉 문학의 정수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나무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동물의 맑고 밝은 눈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바다의 반짝이는 등대이다.

 

  여러분은 시를 찾아서,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 시를 찾으셨는가? 시인을 만나셨는가?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나는 이제까지 시를 써 오면서 시론이라는 것을 말로나 산문으로 써서 펼쳐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은 시론가, 문학평론가, 시를 연구하는 학자가 할 일이다. 시인이란 아무 걸림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자유인이다. 우주를 쫙 펼쳐 놓고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시를 쓰리라. 별을 바라다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 개 따다가 품어 보리라. 바다를 몽땅 퍼다 밤새워 소금꽃을 피워 보리라.

 

  나의 시는 무엇이고 나는 어떤 존재인가.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래서 내 詩는 가장 완벽한 예술품인 자연을 흉내를 낸 것, 즉 모방한 것뿐이다. 아니면 내 詩는 자연에서 빌린 것뿐이다. 나는 늘 일탈逸脫을 꿈꾸고 시의 모반謨反을 계획한다. 일탈逸脫은 일탈一脫로 족하다. 이탈二脫이 되면 이탈離脫이 되고 만다. 모반은 모반계획만으로 족하다. 그래도 나는 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汽水地域으로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오늘도 나는 기수지역을 꿈꾸고 내일은 그곳으로 일탈을 감행코자 한다.

 

  1970년대 초 어느 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국어 선생님 한 분이 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바로 강사를 채용할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국어교사들이 한 반씩 맡아 수업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어교사들이 달려들어도 한 반이 남게 되어 시인이라는 죄로 내가 한 반을 맡아 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국어교사가 시를 좋아해서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대개는 참고서에 있는 답을 책에 적어 가지고 들어가서 시 강의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국어교사가 된 나는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선언을 했다. 나는 여러분이 이제까지 시 공부를 한 대로 가르치지 않고 나대로 자유롭게 시를 함께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가르치는 대로 수업은 받지만 시험을 칠 때는 참고서에 있는 대로 답안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중고등학교에서의 시공부는 교사를 잘 만나면 많은 시를 암송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참고서가 교사보다 위에 서서 시를 망치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참고서에 있는 대로 한다면 칼과 도끼로 시를 토막치고 잘라서 맛없는 음식을 요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를 토막 내서 아무 맛도 없이 분석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시감상은 한 그루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나무가 모여 이루고 있는 숲을 볼 수 있도록 감상하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다. 당신이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라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에게 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시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시는 무엇인가? 詩는 是이고 詩人은 是人이어야 한다. ‘語’자를 보면 ‘言’과 ‘吾’가 합쳐 만들어진 글자이다. ‘言’ = ‘吾’의 관계이니 바로 ‘말씀’이 ‘나’란 뜻이다. ‘나’를 ‘말씀’하는 것이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니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詩'는 '言'과 '寺'가 합쳐진 것이다. 그러니 詩는 말씀의 절이고 그 절에 있는 빛나는 ‘언어의 경전’이다. 나는 시는 시시是是한 것이고 시인詩人은 시인是人이라고 시인是認하는 사람이다.

 

  시는 쉽고 짧고 재미있어야 한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하듯 시도 맛이 있어야 한다. 향기가 있어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시는 한번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시는 읽고 난 후에 사색에 젖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울려주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짜릿하게 파문을 일으키든가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시는 진선미의 맑고 고운 맛과 멋이 배어 있어야 한다.

 

  시는 꽃이어야 한다. 꽃은 색깔과 향기와 꿀과 꽃가루가 있어 벌 나비가 모여든다. 꽃의 형태는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가. 독자가 없는 시는 조화나 시든 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시는 물이어야 한다. 사람들을 촉촉이 적시고 가슴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 줘야 한다.

 

시는 矢〔화살〕이어야 한다. 독자의 가슴을 꿰뚫을 수 있는 말씀의 화살, 언어의 금빛 화살이 되어야 한다. 독자들의 가슴에 꽂혀 파르르 떨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시에서 '나'를 써라. 내 이야기를 하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의 경험, 내 주변의 이야기를 써라. 나의 가족, 친구, 풀, 꽃, 나무, 새를 주제로 삼아 솔직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라. 시를 쓰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좋은 시를 많이 암송하고 필사하는 것이다. 모방과 흉내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목소리, 자신만의 세계를 찾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며 시의 씨앗을 메모하고 초고를 만들어 퇴고를 거듭하라.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고 생각되면 여러 번 소리를 내서 읽어보고 쓸 만하다고 여겨지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읽어 보게 하라.

 

왜 시인인가. 시를 쓰는 이는 왜 '詩家'가 아니고 '詩人'인가?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극작가처럼 '家'가 아니고 '人'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시는 말씀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말씀의 '경전'이고 시인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이 아니라 '시를 낳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길은 어떠한 길인가. 시인은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是人]이다.

시인에게 있어 어떤 정신이 바른 정신인가? 시인정신이란 선비정신풍류정신이 하나로 합쳐진 정신이다. 선비정신은 어떤 것이고 풍류정신은 어떤 것인가.

  선비정신이란 청렴과 결백의 염결廉潔정신이다. 청렴이란 마음이 고결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음이고, 결백이란 행동이나 마음이 조촐하고 깨끗하여 허물이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선비정신에는 독서, 분수, 배려, 관용, 포용의 정신이 들어 있으며 지조와 절개로 상징되는 의리정신도 포함된다. 그래서 선인들은 선비의 서재에는 '책과 거문고와 칼[書琴劍]'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함은 물론이고 거문고를 켜지 못해 벽에 세워만 놓아도 저절로 울어 줄 것이니 술 한잔이 있으면 풍류로 족할 것이다. 칼[劍]은 자르고 깎고 찌르고 베는 한 날의 칼[刀]과는 달리 양날을 지니고 있어 상대와 내가 조화 균형을 이뤄 중심을 잡고 조심하도록 마음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풍류란 바람이 불 듯 물이 흐르듯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자연처럼 사는 것이다. 풍류도란 화랑도 즉 유불선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엔 음주 가무 놀이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처럼 바람처럼 막힘이 없이 멋과 자유를 즐기며 사는 신선사상, 즉 신바람 세상을 꿈꾸는 정신이다. 시인을 일러 선계에서 벌을 받아 인간계로 귀양을 온 선인, 즉 적선謫仙이라 하지 않는가.

  시인은 올곧은 정신을 가지고 쓴 시로 세상을 환하고 따뜻하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시인은 군림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장사꾼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인의 삶은 참사람의 삶이요, 선비의 삶이어야 한다.

 

  끝으로 내가 쓴 두 편의 글에서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시의 길, 시인의 길'에 마침표를 찍는다.

 

시인은 감투도 명예도 아니다

상을 타기 위해, 시비를 세우기 위해, 동분하고 서주할 일인가

그 시간과 수고를 시 쓰는 일에 투자하라

그것이 시인에겐 소득이요, 독자에겐 기쁨이다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이 필요할 따름이다

변두리 시인이면 어떻고 아웃사이더면 어떤가

목숨이 내 것이듯 시도 갈 때는 다 놓고 갈 것이니 누굴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으로 상을 당할 일도 아니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그것이 시인이 받을 보상이다.

            -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의 끝 부분

 

이름 없는 풀이나 꽃은 없다, 나무나 새도 그렇다

이름 없는 잡초, 이름 없는 새라고 시인이 말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모든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다

이름없는 시인이란 말이 있다

시인은 이름으로 말해선 안 된다 다만 시로  말해야 한다

이름이나 얻으려고 장바닥의 주린 개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기웃대지는 말 일이다

그래서 천박舛駁하거나 천박淺薄한 유명시인이 되면 무얼 하겠는가

속물시인,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꺼귀꺼귀하는 속물이 되지 말 일이다

가슴에 산을 담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스럽게 사는 시인

자연을 즐기며 벗바리 삼아 올곧게 사는 시인

욕심없이 허물없이 멋을 누리는 정신이 느티나무 같은 시인

유명한 시인보다는 혼이 살아 있는 시인, 만나면 반가운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될 일이다.

               - <고운야학孤雲野鶴의 시를 위하여>의 끝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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