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11

백모란

백모란 洪 海 里  첫날밤 치른 초록 궁전, 외동공주의 백옥 침상.  * 해마다 5월이 되어 뒷산 꾀꼬리 노랫소리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면운수재韻壽齋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백모란이 피었다고. 막걸리 한 통을 메고 운수재로 달려가면 백옥 같은 모란이 동산을 이루어 피어 있다. 꽃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솜씨 좋은 마님이 안주를 준비해 나오신다. * 운수재는 임보 시인댁.

귀가 지쳤다

귀가 지쳤다洪 海 里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까지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한다. 안 들을 소리를 듣고서 이물질 같아서 귀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

산수유 그 여자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비슷하다. 진달래보다도 더 일찍 피는 눈 속의 매화나 동백 말고는 초봄에 가장 먼저 피우는 것도 같다. 그러나 비슷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은 우선 색깔이 노랗고 멀리서 보면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에서는 산수유를 볼 수가 없고 생강나무는 깊은 산은 아니더라도 산에 가야 만날 수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꽃모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꽃이 다를 뿐 아니라 수피도 다르고 잎도 다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은 둘 다 진달래나 목련, 벚꽃처럼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지만 산수유는 암수한꽃이며 생강나무는 암수 딴그루이다. 꽃 모양 또한 전혀 다르다. 생강나무꽃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암수 꽃 구분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피며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