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106

가을 들녘에 서면

가을 들녘에 서면 洪 海 里 다들 돌아간 자리 어머니 홀로 누워 계시네 줄줄이 여덟 자식 키워 보내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처럼 다 퍼내 먹은 쌀뒤주처럼 한 해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허허한 어머니의 生이 누워 계시네 알곡 하나하나 다 거두어 간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겨울바람 매섭게 몰려오는 기러기 하늘 어둠만 어머니 가슴으로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길에는 막차도 끊겼는가 낮은 처마 밑 흐릿한 불빛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위하여 빈 몸 하나 허허로이 누워 계시네. -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지는 꽃에게 묻다

지는 꽃에게 묻다 洪 海 里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