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불 날아가는 불 洪 海 里 평생 퍼마신 술이라는 이름의 물로 이 몸은 술통이 되었다 술독이 오른 술독이 되었다 술독이 오르니 온몸에 술의 독이 퍼지고 술병이 든 술병이 되었다 온몸이 술이 되었다 몸은 없고 술만 있다 바람에도 날아가고 물 한 방울에도 씻겨내리는 아무것도 없는 몸이 ..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옥매원의 밤 옥매원玉梅園의 밤 洪 海 里 수천 수만 개의 꽃등을 단 매화나무가 날리는 香이 지어 놓은 그늘 아래 꽃잎 띄운 술잔에 열이레 둥근 달도 살그머니 내려와 꽃잎을 타고 앉아 술에 젖는데, 꽃을 감싸고 도는 달빛의 피리 소리에 봄밤이 짧아 꽃 속의 긴 머리 땋아내린 노랑 저고리의 소녀가 꽃의 中心을 잡아, 매화를 만나 꽃잎을 안고 있는 술잔을 앞에 놓고 부르르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있는 詩人들, 차마 잔盞을 들지도 못한 채 눈이 감겨 몸 벗어 집어던지고.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아름다운 남루 아름다운 남루 洪 海 里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다시 보리밭 속으로 다시 보리밭 속으로 洪 海 里 푸른 바람으로 파도를 일으켜 사래 짓는 두둑 두둑의 청보리도 바람 한 끝에서 흔들리고 나서야 단단히 무르익어 한그늘을 짓느니, 질펀한 보리누름에 하늘은 푸르른데 풋풋한 내음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보리밭 이랑에 새벽녘까지 울다 지쳐 가슴 시린 소쩍..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겨울 속의 눈과 눈들 겨울 속의 눈과 눈들 洪 海 里 밖에는 눈 내리고 바람 찬 한겨울날 며칠째 무릎에 침을 꽂고 반듯이 누워 창 밖으로 흐르는 세월을 뒤돌아보면 절름거리며 걸어온 길이 아득히 먼 하늘가로 허위허위 숨 가쁘게 가고 있다 갈길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따끔거리는 달빛과 햇살과 뻐근한 물과..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洪 海 里 단단한 어둠이 밤을 내리찍고 있다 허공에 걸려 있는 칠흑의 도끼, 밤은 비명을 치며 깨어지고 빛나는 적막이 눈을 말똥처럼 뜨고 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도원을 위하여 도원桃源을 위하여 洪 海 里 북한산 깊은 골짝 양지바른 곳 겨우내 적멸에 젖어 있던 자리 봄볕만이 절망적으로 따사로워 나, 도화 한 그루도 꽂지 못하고 허공의 밭자락에 복숭아 꽃불만 아무도 모르게 피워 놓았다니까 아무도 모르게 피워 놓았다니까. (시집『봄, 벼락치다』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시> 이팝나무 이팝나무 洪 海 里 흥부네 자식들이 이밥 한 그릇 앞에 하고 비잉 둘러앉아 있다. 하늘이 밥이다. 꽃은 금방 지고 만다. 이팝나무 소복한 꽃송이 흰쌀밥 향기로 흥부는 배가 부르다. -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
요요 요요 洪 海 里 우체국 가는 길 초등학교 앞 어른 키만한 나무 구름일 듯 피어나는 복사꽃 헤실헤실 웃는 꽃잎들 가지 끝 연둣빛 참새혓바닥 일학년 일과 파할 무렵 이따끔 터지는 뻥튀기 혼자서 놀고 있는 눈부신 햇살 요요하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6